20191115 두루마리를 취하신 어린양 예수 (요한계시록 5장 1~7절)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고된 노역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도 요한… 어느 날 그는 환상 가운데 하늘에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에 펼쳐진 놀랍고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았으며, 보좌 주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네 생물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몸을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며 면류관을 벗어 드리는 이십사 장로들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 비록 그의 몸은 고된 유배지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의 영혼은 환상 가운데, 온 세계 위에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 예배의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시작된 이 환상이 5장으로 넘어가면서 사도 요한의 두 눈을 특별히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1. 인봉된 책과 요한의 눈물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책이 한 권 들려 있습니다. 이 책은 과연 무슨 책일까요? 1절 말씀을 보니 이 책은 안팎으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주신 책들은 안팎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 책들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이 책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 내용을 기록하신 책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들린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 에스겔서 2장 8-10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2:8)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2:9)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2: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겔이 천사로부터 두루마리 책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본 책도 두루마리 책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니 에스겔이 받은 책 또한 안팎에 글이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10절 하반절을 보니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애가, 애곡, 재앙의 말입니다. 이 두루마리 책은 다가올 심판과 재앙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펼쳐지는 바로 그 때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심판이 전개될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5장 1절로 돌아옵시다. 하나님께서 다가올 심판과 재앙을 상세하게 안팎으로 기록하신 두루마리 책. 오늘 본문은 이 책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들려 있다고 말해줍니다. 오른손은 권세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즉 온 우주의 미래를 주권적으로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인해 역사는 이 책에 기록된 내용 그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과 공포가 되겠으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심판과 재앙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이 이 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도 볼 수 없게 일곱 개의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숫자 일곱은 완전수로 아무도 볼 수 없게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고대사회에서 두루마리는 통치자들이 공적인 내용들을 기록하여 상대방에게 중요한 내용들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두루마리를 봉한 인은 오직 이 두루마리를 쓴 주인과 수신자만이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수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인을 깨고 두루마리의 내용을 훔쳐본다면 그에게는 끔찍한 형벌이 주어지고, 심한 경우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직접 안팎으로 기록하신 이 두루마리 책을 그 어느 누가 열어 볼 수 있을까요? 본문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5: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두루마리를 펼칠만한 권세와 능력을 가진 자를 찾기 위해 천사가 소리 내어 외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외치고 있는 천사 자신도 힘이 센 천사 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고 힘있는 천사라 하더라도 그 스스로 인을 뗄 자격이 되지 않았고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천사가 아무리 찾아도 하늘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그 어디에도 이 책을 펼쳐볼 자격과 능력이 있는 자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책을 함부로 열었다가는 저주와 죽음 그리고 무서운 형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천사가 물어본 질문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라는 질문은 “어느 누가 역사의 주인인가?”와 동일한 물음입니다. 인을 뗀다는 것은 두루마리의 내용을 계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 내용들을 성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인을 떼기 합당한 자를 찾는 것은 역사의 주인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네 생물도, 이십사 장로도, 힘 있는 천사도, 요한 그 자신도 역사를 주관하는 자가 아니었기에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고 펼쳐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럴 권세와 능력 또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 책을 펼쳐줄 “합당한 자”, “역사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요한이 크게 울음을 터트립니다. 왜 요한은 이 대목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을까요? 도대체 인을 떼고 책을 펼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이 책을 펼칠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 눈물까지 흘리는 것일까요? 사실 책이 안 펼쳐지면 재앙도 안 오고 좋은 거 아닐까요? 사도 요한이 울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이 펼쳐지는 것 그것은 온 세상의 심판을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심판과 함께 구속 역사의 완성이 올 것입니다. 온 성도가 그토록 기다리던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려면 반드시 이 두루마리가 펼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도 이 책을 펼치지 못한다면 요한과 같이 성도들은 계속해서 로마의 핍박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절망 가운데 계속해서 사탄과 그의 하수인들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고통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속 사역과 성도들의 승리 자체가 한낮의 꿈이요,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요한은 큰 소리로 탄식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역사는 이대로 사단과 악한 세력에 의해서 다스려져야만 하는 것인가? 슬픔과 좌절 가운데 울고 있는 사도 요한을 향하여 장로 한 사람이 다가옵니다.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장로는 사도 요한에게 반전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일곱 인을 뗄 존재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복음입니다. 악한 사단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구속 역사의 완성을 이루실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누구십니까? 장로는 그를 가리켜 유대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라 소개 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란 표현은 창세기 49장에 기록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분은 사자와 같이 강한 힘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은 그분께서 다윗이 후손으로 오실 것이며,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실 분을 가리킵니다. 유대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기름 부으신 메시아, 영원토록 다스릴 왕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6-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5: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계신 ‘어린 양’을 봅니다.
우리 나라말에는 ‘어린양’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만,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에 잡는 어린양에는 ‘귀염둥이 어린양’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오던 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 절기 때 아무 양이나 무턱대고 잡은 것이 아닙니다. 절기가 이르기 사일 전 흠 없는 어린양을 골라 두어 양 무리에서 취한 다음 사흘 동안 방안에서 자녀들과 온 가족과 함께 먹고 자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양을 보고 껴안고 입을 맞추고 잠자리에 함께 들어가 마치 가족처럼 정이 듭니다. 이런 귀염둥이 어린양을 사일 뒤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었으니 그 어린양이 얼마나 애처롭고 불쌍했을까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사자로부터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 사랑스런 어린양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사랑스런 어린양,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 했던 어린양을 사도 요한이 보았습니다.
이 어린양의 특징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의 손과 발에 못 자국을 보여주시고 창에 허리를 찔리신 자국을 가지고 있던 것처럼 사도 요한이 바라본 어린양은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어린양은 반복해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소개 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테마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이제는 충만한 생명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인봉을 떼시기 합당하신 분은 오직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6절에 보니 이 어린양이 뿔과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뿔은 권세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어린양이 일곱 뿔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완전한 권세와 완전한 능력이 있음을 상징합니다.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했습니다. 즉 일곱 눈은 완전하신 성령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지니신 완전하신 어린양, 성자 예수님께서 그 누구도 열어볼 수 없었던 두루마리 책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받으셨습니다. 앞으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의해서 펼쳐질 것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분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봉인된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고 역사를 완성시킬 수 있으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만이 악이 가득한 이 세상을 심판 하시고,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수 있으십니다. 역사의 중심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늘 이 하루 이 위대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