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8 하나님 경외가 우선이다 (전도서 7장 15~18절)

어린 시절 읽는 동화들에는 ‘인과응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착하게 사는 사람은 잠시 고난을 당해도 결국에는 억울함을 풀고 상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나쁘게 살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결국 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 준 흥부는 복을 받고 심술궂게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린 놀부는 벌을 받게 됩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신데렐라를 괴롭히던 계모와 두 언니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음에도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고 착하게 살아가던 신데렐라는 결국 왕자의 눈에 띄어 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처럼 동화 속 이야기들에는 언제나 정의가 살아 있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은 결국 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동화 속 세상처럼 의인이 다 복을 받고 악인은 다 벌을 받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솔로몬도 이러한 인생의 모순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5절에 그가 말합니다. “(전 7: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솔로몬이 세상을 보니 이 세상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오히려 고난을 당하다가 죽고, 악한 사람은 오히려 그 악함 중에 번창하고 장수 합니다. 솔로몬은 부조리한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세가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먼저 우리들은 자신의 의로움과 지혜로움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전 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이 구절은 의인 혹은 지혜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의롭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 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의인이 되기 위해 애쓴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 내면에는 허물과 죄가 있음을 있지 말고 스스로 의인인 체 하지 말라는 경고 입니다. 그렇다면 16절에서 말하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고 했던 사람,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수님 시대에 살고 있었던 바리새인들 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십계명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자기들 나름대로 613가지의 강령들을 만들어서 조목조목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을 존경했고, 그들 자신들도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구별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오늘 솔로몬이 말하고 있는 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여전히 그 안에는 죄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본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자랑하고 내세우던 그들의 의로움은, 하나님 보실 때 더러운 걸레 조각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새벽예배 나오시는 분들은 더 겸손한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 아무게 집사 봐봐. 어떻게 새벽예배도 안 나오지? 난 매일 새벽예배 나오잖아 그러니까 저 사람보단 내가 더 의인이야!”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껍데기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나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바리새인들의 모습처럼 가식적인 것이 되며 우리 영혼에 아무런 유익도 남기지 못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왔고, 우리 스스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 왔을지라도 그것을 마치 자신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업적처럼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 16절과 반대의 말씀이 바로 17절 입니다.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이 말은 “어느 정도 악은 행해도 된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정도는 미련한 짓 저지르며 살아도 된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것은 아무리 사람의 본성이 부패하며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끝까지 그 죄를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7절에 ‘지나치게’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십시오. 인간이 할 수 있는 죄의 행위를 고의적으로 하는데 브레이크 고장 난 덤프 트럭이 수 백명의 사람을 아무렇게나 쳐 죽이듯이, 그렇게 죄를 방치하지 말고 죄를 범하지 말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 세상 한 번 살면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크고 심각한 죄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7절에 솔로몬은 이와 같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 합니다.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제어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악을 행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당기며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악을 행하는 사람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임을 경고 했습니다.
오늘 결론은 18절 말씀 입니다. “(전 7: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솔로몬은 16절과 17절에서 경고했던 양 극단의 모습을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주문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앞에서 말한 양 극단, 즉 지나치게 의롭게 삶으로서 바리새인처럼 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범죄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거나 하는 이 두가지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이 극단적 행동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상급을 받을 것임을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의 의로 인하여 우리 마음이 교만 해지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절대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며 도리어 겸손하게 살아가십시오.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 가식, 외식을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죄성을 지닌 우리이기에 부지불식간에 큰 죄들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십시오. 이 두 가지 극단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