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7 지혜자가 택해야 할 곳 (전도서 7장 1~14절)

전도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이 세상이나 재물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인간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주지 못하며 허무한 삶이 될 것을 강조 했습니다. 전도서 7장에서는 허무함만 가득한 해 아래서 사는 사람이 허무함을 극복하고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이 허무한 인생 속에서 나름대로 보람 있게 사는 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1절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세속적인 명성이나 명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운 이름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다니엘, 다윗 같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평판 즉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보배로운 기름’은 올리브나무 열매에서 추출되는 값비싼 향유를 가리킵니다. 이 기름은 의약품으로 사용되며 왕과 귀족들의 연희에 손님 접대 시 사용되어 매우 귀하고 값비싼 물품이었습니다.
1절에 사용된 ‘보배로운 기름’은 이 당시 값지다고 여겨지는 재물이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라는 말씀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 와 닿게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차 주인 되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낫습니다. 또는 $5,000불짜리 샤넬 가방 매고 다니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낫습니다. 느낌이 오십니까? 1절에 사용된 ‘보배로운 기름’이란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속적인 가치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이러한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 그리고 권세와 같은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를 내림으로써 인간이 이 허무한 세상에 살며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고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며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질 물품이나 재물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의 창조주 되시며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이 참 지혜자 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이 전부라면,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인간의 몸은 죽어도 그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영원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끊이지 않는 수고로 사는 사람보다 결국에는 온갖 고통을 마침내 벗어버리고 안식하는 날 곧 죽음을 맞이하는 날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솔로몬이 지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자살을 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일생동안 겪어야 하는 아픔과 온갖 시련 그리고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며, 천국에서 주와 함께 하는 날에 우리의 소망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솔로몬이 볼 때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그래서 2절에 솔로몬은 말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이 말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과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하게 또한 경건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육신의 즐거움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허랑방탕하게 사는 사람보다 낫다는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2절 하반절에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는 말은 지금 현재 잔치 집에 있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초상집으로 가게 될 것이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죽음으로 향하는 대열에 서게 됨으로써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임으로 이것을 기억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참 지혜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솔로몬은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라고 권면 했습니다. 즉 타인의 죽음을 보며 자기 자신도 절대로 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죽음 이후의 삶 즉 천국과 지옥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 했습니다. 4절에 솔로몬은 지혜자는 늘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란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지혜자를 향하여 그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고 표현하고, 죽음 이후에 대한 삶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살아가는 우매한 자를 가리켜 그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다고 비유적으로 표현 했습니다. 당장 자신이 얻게 될 육신의 즐거움에 취하여 영혼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멸망하게 되는 우매자의 어리석음을 보여 줍니다.
5절에 솔로몬은 책망을 듣는 것이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즉 지금 자신이 전하는 권면처럼 영적인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견책하는 말을 해줌으로써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 당장 귀에 듣기는 좋으나 결국에는 파멸의 길로 이끄는 거짓된 위로, 헛된 격려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의 것들에 빠져 흥청망청 즐기며 살아가는 우매자의 웃음소리가 6절에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다”고 표현 했습니다. ‘가시나무’는 정말 쓸모가 없는 나무 입니다. 얼마나 쓸모가 없냐하면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연료로 사용하면 다른 나무들에 비해서 그 타는 소리조차 요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그 소리에 비해서 열량은 강하지도 못하고 빨리 불타 없어지고 맙니다.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저들이 술에 취해, 세상에 취해 한바탕 웃고 떠들고 요란스럽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도 결국에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처럼 순식간이며 결국에는 저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늘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자가 참으로 지혜자 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주관자 되심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천국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유한함을 기억하고 잠시 잠깐 세상의 낙을 즐기기 보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오늘 이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