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2 하나님 경외, 말하기보다 듣는 것 (전도서 5장 1~2절)

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 혹은 예배에 참여하는 때를 가리킵니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리러 성전에 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발을 삼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삼가다’란 히브리어 말은 ‘조심하다’, ‘신중히 행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갈 때는 마음을 정중하게 모아서 나오라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을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 전부터 준비하지 않을까요? 저 분을 만날 때 무슨 옷을 입고 갈 것인지, 가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고민하지 않겠습니까? 왜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할까요? 대통령이 중요한 사람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대 사회에서 백성이 왕을 알현하러 갈 때는 벌벌 떨며 그 앞에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과는 다르게 왕은 한 나라의 백성을 자기 임의대로 살리거나 그 자리에서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스더도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갈 때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나아갔던 것을 보면 잘 그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왕인 에스더도 바사의 왕 앞에 나아갈 때, 그의 은총을 입기 위해 금식한 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아갔습니다. 왕은 그만큼 대단한 힘과 권세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전에 나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가는데 주말에 놀이동산 가듯이, 가을 단풍 구경 가듯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어느 이민 교회에서 한 청년이 교회에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 신고 왔다가 교회 장로님께 크게 혼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오는데, 그런 복장으로 올 수 있는가?” 하고 크게 꾸중을 들었던 것이죠. 그 청년이 시험에 들었어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는 이래서 안되. 앞으로 나는 미국 교회 가야겠다.” 그리고 이 청년이 그날로 미국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미국 교회를 다니던 어느 날 이 청년이 또 다시 츄리닝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교회에 갔어요. 그런데 그 교회에서 어느 나이가 지긋이 든 한 신사분이 교회에 온 이 청년을 보고 잠깐 불러 세웁니다. 그리고는 말하는 거에요. “우리는 예배 드리러 나아올 때 하나님을 존중하는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나타날까요? 바로 우리의 옷차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이 노신사가 청년에게 옷을 조금만 더 단정히 입고 예배에 와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 했습니다.
지금보다 우리 앞 세대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주 더 철두철미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일에 교회 나올 때 가장 좋은 옷 입고 나왔습니다. 자랑하려고 패션쇼 하려고 그런게 아니었어요. 교회에 누구를 만나러 오는 것이니까요? 절대자이신 하나님, 내 삶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로 온다는 신전의식이 있었기에 그런 신앙이 자리잡은 것이죠. 제가 아는 목사님은 새로 산 정장, 새로 산 넥타이, 새로 산 와이셔츠는 꼭 주일날 먼저 입어야 그 다음에 평일에 입으셨어요.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자 하는 태도와 자세만큼은 배우고 싶습니다.
솔로몬은 바로 이러한 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태도를 강하게 경계합니다. 성전에 나아올 때 내 발을 삼가라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너의 마음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라는 뜻 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 올 때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교회 오는 것이 사람을 만나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사람만 만나고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의 자리에 나오며, “나는 지금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배의 자리에서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대개 예배 시작 전에 먼저 자리에 앉아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합니다. 예배를 준비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 하나님의 음성인 주님의 말씀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다” 이는 사무엘이 말한 그 유명한 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제사 행위에만 치우치고 있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너무나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들은 곧 죽어도 제사는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예배에 관하여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러한 면은 비슷합니다. 시카고에 눈이 많이 내리는 날, 대부분 미국 교회는 하루 전날 미리 내일 예배가 없다고 연락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군대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제설 작업을 통해 끝까지 예배 시간을 사수합니다. 물론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은 좋은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겉으로 예배의 자리에는 나와 있지만, 그 예배의 행위만 위할 뿐, 그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존중이나 어떤 기대도 없이 그 자리에서 딴 생각을 하며 예배 시간을 채우고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정말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