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1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전도서 4장 13~16절)

중국의 고사 중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십 일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 입니다. 실제로 중국 온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의 경우, 그는 자신이 중국 최초의 황제이기에 한자 중에 ‘처음 시’라는 글자를 써서 “진 나라의 시황제”라고 이름을 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진 시황 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그를 이어 황제가 될 아들을 이세 황제, 그 다음 황제는 삼세 황제 이렇게 칭하여 자신의 자자손손 만년토록 황제가 이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다르게, 실제로 진 시황의 왕조는 3대도 가지 못한 채, 그의 아들 때에 막을 내리고 맙니다. 이처럼 아무리 막강해 보이는 권력이라 해도, 결국에는 그 끝이 있기 마련 입니다.
솔로몬은 오늘 이 짧은 4구절을 통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왕이 된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 받아 왕이 되는 것은 뭐 특별한 것이 없겠습니다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한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세월이 흘러감으로 인해 이 대단한 업적 조차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논리를 사용함으로써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며 부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에는 헛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그는 13절에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소년을 언급합니다. 가난은 분명 복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가난을 통해서 돈으로도 얻지 못하는 귀한 깨달음과 경험을 얻기도 합니다. 이 소년이 그러한 경우 입니다. 그는 가난을 통해서 인생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탄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슴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이 소년을 지혜로운 소년이라고 칭한 이유는, 그에게는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늙고 둔한 왕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백성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탄식을 듣지도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르고, 백성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관심이 없는 왕을 가리켜 둔한 왕, 즉 어리석은 왕이라고 칭했습니다. 솔로몬은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나 지혜를 통해 자신의 신분과 한계를 극복한 소년이 늙고 완고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왕보다 더 낫다고 평가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백성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그들 곁에서 함께 탄식해줄 줄 알았던 지혜로운 소년은 누구일까요?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지혜로운 소년은 바로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고통 받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았던 이 왕은 누구일까요? 바로 다윗이 가난한 목동 시절,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울 왕을 가리킵니다.
첫 번째 견해에 비해 두 번째 견해가 더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요. 많은 신학자들이 본문에서 솔로몬이 말하는 이 지혜로운 소년은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4절에 이 소년이 ‘감옥에서 나왔다’는 표현이 있는데, 다윗은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요셉은 왕이 된 적이 없고 오직 총리의 자리에 오른 사람 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14절에서 ‘왕이 되었다’는 표현이 왕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해주는 근거가 바로 15절에 있습니다.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이란 표현을 보십시오. 여기서 ‘왕의 버금’이란 말은 “왕 다음으로”란 뜻 입니다. 즉 이 소년은 왕의 후계자란 뜻도 있지만, 왕 다음으로 큰 권세를 가진 자란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견해는 이 지혜로운 소년은 다윗도 요셉도 아닌 역사 속 다른 인물이거나 솔로몬이 지어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주장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세 번째 견해가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6절에 나오는 내용 표현을 보면 이 소년의 삶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고 했는데, 다윗이나 요셉의 삶은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 번째 견해를 더 지지 합니다. 솔로몬이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인생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통해 예를 들고 있는 것이죠. 16절 입니다. “(전 4:16) 저희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가난했지만 지혜로운 소년은 자신의 암울한 상황과 한계를 뛰어넘어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수한 사람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끝이 없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소년의 인생도 세월이 흘러가면 결국 왕의 권좌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긴 시간 뒤에 그 소년도 자신이 다스리던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는 신세가 됩니다. 16절 표현처럼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권불십년’이란 말처럼 권력이란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대중의 인기와 명예 역시 무상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모든 세속적인 삶이 결국에는 무가치하다는 것과 동시에 영원하신 절대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덧없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 인기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 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존귀한 자로 대접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서는 절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올바로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인생의 참된 행복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아침 안개처럼 잠시 후면 살아질 세상의 권력과 재물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섬기는 참된 지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