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4 지혜자나 우매자나 일반이라 (전도서 2장 12~17절)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길과 미련하게 사는 길이 있다면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지혜로운 길이겠지요. 주어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치에 맞게 판단하여 대처하는 사람은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자의 삶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얇은 얼음 위를 걸어가듯이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지혜’는 분명 우리들에게 큰 유익함을 가져다 줍니다. 이 점은 솔로몬도 동의 했습니다. 그는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난 것과 같이 지혜가 어두움보다 뛰어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인생을 긴 관점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분명 지혜자가 우매자에 비해서 갖는 이점과 우월성이 있는 것은 사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자나 우매자나 결국에는 동일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도 결국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우매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지워지게 됩니다. 솔로몬은 이 사실 앞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인생을 산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지혜자도 우매자처럼 원하지 않는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해 아래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한계성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모든 부귀와 명예를 소유하였고,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은 자신 역시 우매자처럼 결국에는 전혀 다를 바 없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 앞에 굉장히 큰 허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15절 말씀 입니다. “(전 2:15)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자신과 같은 지혜자나 우매자가 결국에는 똑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솔로몬은 크게 실망하고 또한 절망 합니다. 솔로몬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부각시키며, 인간이 해 아래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사실은 매우 헛되고 무익한 것일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절 입니다. “(전 2:16)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 세상에서 한정된 시간만 살다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다른 이들 가운데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지혜를 통해 세상에 많은 공헌을 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남기려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볼 때 이러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우매자와 비교해 볼 때, 조금 더 천천히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차이만 있을 뿐 종국에는 오랜 세월 뒤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이 점을 지적하며 지혜자나 우매자나 둘다 이 땅에서 결국에는 소멸되어 버릴 존재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16절에서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인 것이죠. 솔로몬은 이러한 사실을 깨우침으로써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과 또한 열심을 내어 성취하려는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고 무익한 일임을 다시 한 번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이 얼마나 허무하게 느껴졌을까요?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전 2: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여기서 사용된 ‘한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단어 ‘사네’라는 동사가 쓰였는데요 이는 본래 ‘미워하다’, ‘증오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언제 쓰이냐 하면, 어느 대상에 대해서 몹시 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이후에 결과를 보고 기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큰 실망을 안겨 주었을 때, 그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원망과 미움의 감정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허무함으로 가득 찬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이처럼 눈물겹게 수고하며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없고 헛된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며 자신이 이 허무와 공허만 남은 땅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증오스럽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솔로몬은 “더 이상 이 헛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토해 우리는 몇 가지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삶은 죽음을 인식하고 살 때 인생의 가치를 비로소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솔로몬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찾아올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세상의 가치에 사로잡혀 큰 부와 명예를 흡족해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귀영화와 세상 제일 가는 지혜를 가지고도 여전히 스스로 채울 수 없는 인생의 한계를 발견하고는 인간이 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지, 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불행한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을 겸손케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강한 사람도, 부자도 죽음 앞에서는 다 예외 없이 똑같이 무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세상을 떠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솔로몬은 죽음을 준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란 결론을 얻게 됩니다.
또한 솔로몬이 말한대로 인생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기억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기억되려고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에는 다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되이 살아가려고 몸부림 친 인생은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기억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을 만나 뵐 때에 하나님께 인정 받고 칭찬 받는 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없어질 물질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것입니까? 누구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없어질 사람입니까? 아니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시선을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향해 고정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