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8 음해와 오해를 받더라도 (고린도후서 12장 14~21절)

거짓 교사들 중에는 바울이 구제헌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취하고 있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속임에 넘어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려 했던 연보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와 바울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바울은 이와 관련하여 자신의 동역자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 오해를 풀고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하려 합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의해 오해는 불씨가 번지듯 더 커지고 맙니다. 이에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영혼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덕을 세우는 사역만을 했을 뿐, 헌금을 착취한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세번째로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번 방문에서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돈을 받거나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이전의 두 번의 방문에서도 그가 고수해 온 사역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거짓 교사들이 자신을 공격한 것처럼 재물을 바라고 고린도 교회에 온 것이기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서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지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영적 아버지인 자신은 영적 자녀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는 자가 되를 원하지 받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15절에 바울은 그 자신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크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가진 재물을 사용하고 자기 자신까지도 다 바치겠다고 고백합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라면 자기 자신이 소진된다 하더라도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것입니다. 15절 후반절 보십시오.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바울은 이렇게까지 자기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되돌아오는 사랑이 없음을 보고 매우 아쉬워 했습니다.
자신은 온 몸을 다해 교회를 사랑하고 온 정성으로 성도들을 섬겨왔는데, 자신을 향해 교회의 재물을 횡령했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덮으니 바울이 얼마나 억울 했겠습니까? 16절 보십시오 “(고후 12: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또 어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바울이 간교한 사기꾼 같이 속임수를 사용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부터 착취하였다고 하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바울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은 누구의 이득도 취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17절 보십시오. “(고후 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바울은 그 동안 자신이 보낸 사람들을 통해서 이득을 취한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18절에는 그가 고린도 교회로 보낸 디도 역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한 일이 없지 않냐고 반문하며 자신의 정당함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며 참 사실을 밝혀 교회에 덕을 세우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관심은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 성도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에 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자신이 이제 3차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될 터인데, 이번 방문에서 꼭 보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야기 합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고린도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20절에 그 목록을 보니 곧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비방함, 수군거림, 거만함, 혼란 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21절에 보면 바울은 이전에 성적인 죄를 범하고 음란을 행한 성도들이 아직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을까 염려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교회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 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들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교회와 영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온 정성을 다해 성도들을 섬겼으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또한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여전히 회개하지 못하고 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했습니다.
21절에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울에게 있어서 이처럼 자신이 성실과 사랑으로 섬겨온 교회의 성도들이 주님을 떠나 죄의 길에서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사역자인 자신의 자부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외침은 동일합니다. 고린도 교회로부터 어떤 재물이나 도움 같은 것 받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런 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영적 성장을 이룬 참 성도들로 자라나고 있기만을 바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극정성으로 고린도 교회를 섬겼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쉼도 없이 피와 땀과 눈물로 성도들을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그의 가르침과 사역을 거부한 교회 입니다. 게다가 그가 돈을 착취했다고 음해하고 재물을 위해서 일한다고 근거 없이 바울을 헐뜯었던 교회 입니다. 인간적으로 그 어느 사역자가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이런 교회를 다시 찾아가고 싶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자신을 비난하고 음해하는 교인들의 모습에 가슴에 대못이 박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고린도 교회를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어떤 음해와 오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오해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임에도 자신의 적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끝까지 그들을 품에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성령 안에서 서로 화해하기를 바라며 끝까지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며 사랑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나를 괴롭게 하고 오해하는 그 사람에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하고 복수하고 앙갚음 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까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열매로 여기며, 부모처럼 사랑하는 바울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자들을 끝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어 주고, 한 성령 안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