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7 약한 그 때에 강함이니라 (고린도후서 12장 1~13절)

바울은 자신의 사도 됨을 부인하는 대적자들을 향해, 자신이 가진 참 사도라는 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참 사도 되는 표지는 어떤 수료증이나 면허증 같은 문서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앞서 고린도전서 11장에는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당했던 극심한 고난들과 많은 수고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모든 고통과 고난을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로 보내심을 받은 자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내려놓을 정도로 사랑해왔음을 나타내었습니다.
바울의 대적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 즉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들을 높여 세우고 바울을 그들과 비교하며 사도 될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도 지극히 크다하는 그 사도들에 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 간증을 언급합니다. 바울의 첫 번째 간증은 그가 셋째 하늘을 경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신비적인 간증을 말하는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이 그의 이런 경험적 부족이 사도가 되지 못하는 중요한 결함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도로서 부족하지 않은 것을 보이기 위해 이 사건을 언급합니다.
자, 그런데 말씀을 보십시오. 2절과 3절을 보면 바울이 지금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3인칭 화법을 쓰며 마치 자신이 아닌 타자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듯 글을 서술 합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는 자신의 신비적 체험과 계시를 자랑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고려해 자신에 경험한 환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만, 주의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14년 전에 일어난 것이며, 자신이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늘이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아래가 우리가 아는 파란 하늘입니다. 그 위 둘째 하늘은 우주적 하늘입니다. 가장 높은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 하늘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끌려간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4절에 그는 이 셋째 하늘을 ‘낙원’(Paradise)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저 너머의 세상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곳에서 사람이 능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에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적 체험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영적인 체험에 대해서 속속들이 풀어놓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런 영적 경험에 대한 간증들로 인해 자칫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관을 갖게 되고, 또한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이 더 드러나고 더 큰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영적인 체험은 귀한 것입니다만, 바울은 결코 다른 이에게 그것을 자랑하거나,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 같았으면 동네방네 자신이 삼층천에 갔다 왔다고 떠들고 난리법석을 떨었을탠데 바울은 이러한 간증을 성숙한 이유로 남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죠. 6절에 바울은 이러한 간증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무언가 특별한 영적 권위자로 평가하고 하나님보다 더 집중할까 두려워서 이 간증은 이 즈음에서 멈추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간증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육체의 가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학자들마다 바울이 가진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대개 바울이 가지고 있던 육체의 가시를 눈병, 두통, 말라리아, 언어 장애, 간질 즈음으로 생각합니다. 이 중 어느 것이라 할지라도 큰 질병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여러 계시들과 환상들로 인해서 교만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8절에 바울은 그의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기를 위해 세 번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의 횟수 세 번은 문자 그대로 3번이 아니라, 완전수 3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특별한 이유 때문에 바울의 이러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 곧 주님의 강함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기 보다 이것을 남겨 두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심을 깨닫고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하며 사람들에게 자랑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이제까지 그리스도를 위해 당해 왔던 모든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똑똑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힘이 세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연약하게 만드시고 때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하도록 온전치 못한 지혜만 주십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의존하고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살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이 나타남으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내 힘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된 것임을 고백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도 연약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가진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난함 가운데 살아갑니다. 어떤 분들은 몸이 연약해 여러가지 질병으로 아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우리의 부족함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하나님을 찾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을 더욱 간절하게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 사모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이러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놀라운 능력을 베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 세상에 나타내 주십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제 더 이상 그의 미련함, 그의 가난함, 그의 병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자에게 그의 약함은 주님 안에서 강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가 내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놀랍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나의 약함이 주 안에서 곧 강함이라 고백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