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6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자랑은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

거짓 교사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부터 자신이 참 사도로서 그 동안 어떻게 사역해 왔는지 언급합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사역하면서 교회로부터 아무런 재정적인 도움도 받지 않고 사역 했습니다. 이 당시 거짓 사도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고 돈을 벌기 위해서 말씀을 가르쳤으나, 바울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 사역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사도 직분을 수행하면서 겪어 왔던 수많은 고난들과 수고를 언급합니다. 그럼 바울은 어떤 종류의 고난을 당했을까요? 그 목록이 23-27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 목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많이 수고함, 투옥당함, 매 맞음,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당함, 사십에 감한 매 다섯 번 맞음, 세 번 몽둥이로 맞음, 한 번 돌로 맞음, 세 번 배가 파선 당함, 일 주일 이상을 망망대해서 표류함. 강물에 빠져 죽을 뻔함, 강도를 만남, 이방인의 위험, 도시에서 당하는 위험, 황량한 광야에서 당하는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신자들로부터 오는 위험, 수고하고 애씀, 수 차례 잠 못 들어 밤을 샘, 배고픔 당함, 목마름 당함, 자주 굶주림, 추위에 떪, 헐벗음에 고통 받음…” 바울은 이 밖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수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것들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참 사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많은 수고를 감당하고, 고난을 인내해 왔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삯꾼은 맹수가 오면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는 법입니다. 그러나 참 목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맹수를 좇아가 그의 목을 붙들고 그 입을 열고 자신의 양을 꺼내 옵니다. 거짓 사도들은 고난이 찾아오자 다 도망 갔습니다. 바울을 비난하고 모함하던 거짓 사도들은 도무지 바울이 당했던 고난을 겪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고난이 찾아오면 바로 짐 챙겨서 자리를 떠난 것이죠. 그러나 바울 자신은 끝까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고 수고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바울이 열거한 고난과 수고의 목록들은 마치 군대 갔다 온 사람이 자신을 자랑하려고 지난 일을 회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겪어온 고난과 인내해 온 시간이 자신의 사도됨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득불 이런 ‘자랑’이란 어리석은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은 그들의 외모와 언변을 중심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외적인 요소들이 참과 거짓을 구분해주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오히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만큼 극심한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헌신과 수고를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참된 사도의 길을 걸어 왔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전 생에를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지 않은 자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삶 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복음 증거하는 자로 불러 주시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삶을 통해 바울은 고난 앞에서 도망 가버리는 거짓 교사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그런 그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사도권을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 됩니다. 편안하고 좋은 날에는 겉으로 보면 누가 신앙이 좋은지 잘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면 비로소 누가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 앞에서는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이 구별되는 법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없고 심지어 그의 삶이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가 겪는 고난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임을 입증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 신자는 이러한 고난을 통해 자신의 신앙과 성품이 더욱 성숙하고 단련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며 제 가슴 한 켠을 매우 찡하게 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들을 일일이 장황하게 나열한 이후 그는 자신이 그 밖에 당한 고난들은 접어주고 이 모든 고통과 환란 외에도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고통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 무엇일까요? 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후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은 이 모든 극심한 고난과 끝없는 수고 가운데도 교회를 염려 했습니다. 28절에서 ‘내 속에 눌리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걱정이란 뜻 입니다. 즉 바울은 이 모든 고통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으로는 자기 자신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더욱 더 염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어느 성도가 실족 하였다거나,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나고 다투었다는 소식 혹은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목자로서 늘 염려하고 노심초사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나타내는데 가장 훌륭한 자질일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증명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모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그의 가슴 안에 여전히 꺼지지 않고 불 타오르는 영혼을 향한 ‘사랑’입니다. 29절을 눈으로 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11: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걸려 넘어지면, 내 마음이 새까맣게 타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향한 바울의 열심을 보십시오. 그는 교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성도의 실족을 마치 자신이 실족한 것처럼 여길 정도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이는 바울 안에 있는 영혼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가르침을 반박하는 자들을 향해 바울은 할 수 만 있다면 자신의 가슴을 꺼내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 했습니다. 31절에 그가 말합니다. “(고후 11: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고백하며 서약 합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최고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오늘 그것이 바로 교회와 영혼 섬기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교회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최고로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가슴이 뜨겁습니까? 바울과 같이 한 평생 불타는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섬기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