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1 죽음을 짊어져야 나타나는 생명 (고린도후서 4장 7-15절)

사도 바울은 7절에서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그릇이란,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을 의미합니다. 그릇은 얼마나 쉽게 깨집니까? 들고 있다가 손을 놓기만 해도 땅에 떨어질 때 쨍그랑하고 산산조각 나는 것이 질그릇 입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유리 그릇들을 보면 그 강도가 금이나 다이아몬드하고는 비교도 될 수 없이 매우 약합니다. 쉽게 깨지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런 연약한 질그릇 같은 우리들 안에 ‘보배’를 담으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담아 주신 이 보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4절에 나온 ‘복음의 광채’ 그리고 6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7절에서 말하는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입니다. 세상에 그릇이 얼마나 흔합니까? 별로 가치도 없고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이 그릇 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들 위에 세상에서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없고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한 번 이런 그림을 떠올려보십시오. 아주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요리를 주문하고 시간이 되니 웨이터가 주문한 요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 우리가 그릇이 가격이 얼마나 비싼 게 나왔나 볼까요? 아니면 그 그릇 위에 담긴 요리를 볼까요? 요리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값싼 그릇이라고 하더라도 최정상급 쉐프가 요리한 음식이 담기면 그 그릇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 있으면 그릇이 싸도 상관 없습니다. 손님들은 흡족해 하며 몇 백 불을 지불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이 보잘 것 없는 질그릇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 능력의 복음, 소망의 복음을 담아 주시니까 바울의 삶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비결도 여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매우 연약합니다. 질그릇 같아서, 조금만 고통이 와도 마음에 금이 가고, 조금만 어려워도 깨져버리는 힘 없는 존재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놀라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분명 상황만 보면 넘어져야 하는데 넘어지지 않습니다. 분명 계산기 두들겨 보면 망해야 하는데 망하지 않습니다. 분명 죽을 것 같았는데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복음의 능력 입니다. 8-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은 끊임없이 억압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눌림 당하고 짓 밟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결코 뭉개지지 않았습니다. 도망칠 출구가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피할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방책이 없는 환란, 철저히 포기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찾아왔으나, 하나님은 사망과 절망에 빠진 바울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히면 하나님께서 옥문을 여셨습니다. 태풍이 쳐서 배가 침몰해도 바울은 살았습니다. 독사가 그의 손을 물어도 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돌을 맞아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 버렸으나 기적적으로 바울은 살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웅적인 행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기적과 은혜의 역사는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그의 십자가 죽으심을 많은 이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살았습니다. 10절 입니다.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겪었던 것처럼 바울도 계속해서 고난과 아픔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그는 고백 했습니다.
바울은 실로 예수님을 위해 살았고, 예수님을 위해 고난 당하고 죽는 것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기를 무엇보다 바라고 있었습니다.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고후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복을 받아 더 잘 살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복적인 요소나 외향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담대히 그리고 기꺼이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이야말로 모든 신실한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태도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버리심의 증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이 복음을 전해주기를 바랬는지요. 자기는 죽어도 좋으니 여러분은 꼭 사시기 바랍니다. 하는 마음으로 12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듯이, 자신 또한 복음을 전파하며 겪는 고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밀알이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주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에도 우리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그 분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헌신과 섬김 그리고 낮아짐과 죽음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해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