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6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라 (고린도후서 2장 12-17절)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드로아’란 도시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바울에게 복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그의 믿음의 동역자 ‘디도’를 만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 시간 보다 먼저 드로아로 오게 된 바울은 디도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죠. 이에 바울은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마게도냐로 향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왜 이렇게 바울은 디도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요? 왜 디도를 만나지 못한 것이 그의 심령을 편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요?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드로아에서 하던 복음 전파를 멈추고 마게도냐로 건너간 것일까요? 그것은 디도가 바울에게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해 주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염려로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느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 직접 디도가 있는 마게도냐로 향한 것이죠. 이처럼 바울의 마음에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거룩한 부담이 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여기서 ‘이기게 하다’라는 말은 본래 원어 성경을 보면 “개선 행진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개선 행진을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장군의 개선 행진은 화려한 축제 그 자체 였습니다. 온 도시에 꽃잎이 뿌려지고, 나팔수들의 악기 소리와, 금으로 만들어진 용기나 전리품을 들고 있는 사람들, 피리를 부는 사람, 성전에서 바쳐질 제사로 드려질 소 한 마리,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온 사람들이 행진하고, 그 뒤를 따라는 승리한 병사들은 ‘만세 승리자여!’하고 외치며 장군을 뒤따라 갔습니다.
다시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바울은 자신을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장군을 따르는 개선 행렬의 한 사람처럼 생각하며 참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참여하게 되어 자신도 늘 승리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14절 말씀을 보면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당시 로마 장군의 개선 행렬 시 로마 거리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도록 곳곳마다 향을 불태웠습니다.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향을 맡음으로써 로마 장군의 승리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죠. 바울은 자신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즉 예수께서 죄로 인한 죽음과 저주로부터 승리하신 그리스도 되신 소식이 마치 승전 소식을 알리는 향기처럼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묘사하는 것이죠. 바울은 이처럼 그로 하여금 개선 장군처럼 승리로 인도하시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히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명확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과 동역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고후 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여기서 말하는 향기는 ‘좋은 향기’ 입니다. 로마의 개선 행렬 때 로마 장군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사용된 향기처럼 자신들도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향기’가 됨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로마 시민들이나, 전쟁에서 패하여 노예로 끌려온 이들에게나 향기는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에게는 그 향기가 승리의 달콤한 향기로 다가왔을 것이고, 전쟁에서 패한 노예들에게는 쓰라리고 치욕스러운 향기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사실 똑 같은 향기인데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른 것이죠. 마찬가지로 바울은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의 향기가 믿는 이들에게는 생명의 향기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사망의 향기로 전해지게 됨을 말했습니다. 16절 입니다.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믿는 자들에게는 기쁨의 소식 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은 미련한 이야기일 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이죠.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향기를 나타낼 때 어떤 사람들은 그 향기를 ‘좋은 향기’라 말하며 기뻐하고 받아들이겠지만, 어떤 이들은 복음을 접할 때 찌든 담배냄새 맡 듯 혐오하며 거부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6절에서 말하는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는 뜻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따라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에 이러한 내용의 글을 쓰는 거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 혹은 바울의 대적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복음을 변질시키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후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17절 말씀을 다시 해석해 보면 “왜냐하면 우리는 많은 자들처럼 돈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답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라는 뜻 입니다.
이미 이 당시에도 복음을 변질시켜 자신의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던 거짓 교사들이 존재 했습니다. 더 아찔한 사실은 17절에 보니 그 숫자를 “수다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러한 거짓 삯꾼들이 많았다는 것 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 없이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하였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죠.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며 생명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장사꾼처럼 돈 때문에, 어떤 자신의 이익이나 육신의 안위를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진실로 바울은 그의 언어와 행동, 삶의 태도와 자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낸 사람 입니다. 그가 나타낸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정체성이 바로 하나님 앞에선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바울을 사용 하셨듯이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향기로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복음은 승리의 복음 이요, 기쁜 소식이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