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9 도피성, 값비싼 대속의 은혜 (민수기 35장 22-28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에 따르면 고의적으로 살인한 사람은 반드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상대가 내 가족을 죽이면 나는 살인자를 죽일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만약 살인자의 손에 의해 죽게 되면 남은 나의 가족이 살인자를 처형할 의무가 있는 셈이죠.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된 경우, 살인자를 찾아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은 가문의 명예와 관련된 일 입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살인자를 끝까지 찾아가 그의 피를 보기까지는 더려워진 가족의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살인이라는 것이 고의적으로 저지른 살인도 있는가 하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도 있습니다. 아무런 악의나 원한도 없는 사람의 우연한 행위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죠. 이런 경우에도 죽은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은 망자의 복수를 위해서 혹은 가족의 명예를 위해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매우 억울한 상황 입니다. 이처럼 우발적인 살인의 당사자에게 복수하는 일은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켜 복수의 복수를 낳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의의 사고로 살인 자, 즉 살해 의도가 없는 살인자의 경우 도피성으로 피신하여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도피성 제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복수자가 그를 죽이기 위해 뒤에서 칼을 들고 좇아 온다하더라도, 일단 도피성 안에 들어오면 그를 해할 수 없습니다. 도피성 안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죄인에 대한 일종의 특별법의 효력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죠. 도피성 안에서 살고 있는 레위인들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피의 복수자로부터 보호해 주었고, 그가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보장해 주었습니다. 만일 재판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사전에 모의를 하고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도피성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는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의 살인 행위가 우발적인 사고 혹은 그의 실수로 들어나게 되는 경우에는 그 행위의 결과가 살인일지라도 그의 생명은 보호를 받고 살아 남을 수 있게 됩니다. 단, 여기 아주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붙게 됩니다. 그 사람이 도피성을 떠난 경우에는 피의 복수자가 그를 죽여도 됩니다. 그러니까 이 우발적 살인자의 생명이 보호 받는 것은 그가 도피성 안에서 지낼 때만 유효합니다. 그 내용이 26-28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찌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이 말씀에 따라 생각해보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자는 평생 고향과 가족들을 떠나 도피성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럼 가족들이 도피성으로 이사 오면 되지 않나?’하고 간단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당시는 농경 목축 사회 입니다. 즉 가족이 먹고 사는 생계가 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대 입니다. 따라서 땅을 떠난다는 것은 생계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도피성에 사는 살인자는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죠. 게다가 고향 땅을 떠나 부모, 아내, 자녀들 떠난 채 새로운 낯선 환경에서 고된 일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평생 성을 떠나 나가지도 못하고 살아야 합니다. 도피성에 들어온 살인자는 그의 생명은 보호를 받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얻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절대로 도피성 밖으로 나가선 안 되는 살인자가 고향 땅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가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피의 보복자도 그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광복절 특사 같은 경우인 거죠. 죄가 사면 됩니다.
자, 그렇다면 왜 대제사장이 죽으면 우발적인 살인자의 죄를 면제 해 주고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일까요? 이것은 대제사장의 죽음은 대표의 원리를 따라 부지 중에 살인한 자의 죄를 담당하여 대신 죽은 것으로 간주 되기 때문 입니다. 이 내용은 신약 성경에서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줍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죽음이 살인자를 죄의 형벌로부터 사면하여 주고 그를 자유케 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들을 죄책으로부터 용서해 주고, 그들을 진리로 자유케 하신 것 입니다.
우리들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은 바로 우리들의 모든 죄악을 해결하여 주시기 위함 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들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죄사함을 얻었고, 참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인해 살인자가 도피성을 떠나게 되면 피의 복수자가 그를 죽일 수 없었던 것처럼,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고, 우리의 원수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예수로 인해 구원 받은 우리는 그와 더불로 그로부터 참 자유를 받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 사단의 노예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도피성 제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냐면, 유대법에는 1년에 한 번씩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잘 닦아 두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도피성으로 가는 길도 폭이 14미터의 큰 길 입니다. 만일 도피성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 길로 나눠지면 이정표를 두어 큰 글자로 ‘미글랏'(도피성)이라고 써놓아야 했습니다. 도피성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가기 쉽도록열려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어디서나 열려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의 이정표가 되어 예수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어느 죄인이라도 예수님께 나오면 그 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참 안식처 도피성으로 삼고 그 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니 참 대제사장이시요,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영원한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달려 나오시는 오늘 이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