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7 나눔을 통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 (민수기 35장 1-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 하셨습니다. 출애굽 한 지 약 40년이나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요단 강 하나만 건너가면 바로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각 지파 별로 땅을 분배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동안 광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작물을 심고, 추수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매우 복된 일 입니다.
그러나 열 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만큼은 땅 분배 대상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일을 도맡아 하도록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레위 다른 지파 사람들처럼 땅에서 농사 짓고 일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사 나머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사 드릴 때 가지고 오는 제물을 통해 그들이 먹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레위지파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제사 드리는 데 그들의 삶이 헌신 되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또한 레위 지파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가나안의 한 지역에 모여서 살 것이 아니라, 열 두 지파의 땅 곳곳에 흩어져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교육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레위인들도 거주할 집은 필요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받은 기업 가운데서 레위인들이 거할 성읍을 떼어 주고 그 성읍 주변을 두르고 있는 초원은 레위인들의 소유가 되게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3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얻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 사면의 들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민 35:3) 성읍으로는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들로는 그들의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저마다 소유한 성읍과 그 성읍 주변의 초지를 레위인에게 주어 그들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제사 드리는 일과 율법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죠. 이러한 레위인들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민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현재 내가 벌고 있는 월급의 10%가 깎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큰 돈 입니까? 그런데 그 돈을 매 달 선교비로 후원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쉬운 결정일까요?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1/10이 아니라 더 많은 비율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분들도 계신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렇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도 하고 시간 내어 봉사도 하고 잘 섬기는 믿음 좋은 분인데, 돈 문제만 나오면 인색한 분이 있습니다. 왜 그렇죠? 힘들게 번 돈인데, 하나님께 내놓기가 너무 어려운 거에요. 그래서 다른 부분에서는 자유한데 유독 물질과 관련해서는 십일조도 안 하고, 선교사님 후원할 생각은 전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알려면, 그 사람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은 몇 천 달라 골프채도 주저 없이 삽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몇 만 달라 차도 아까워하지 않고 지불 합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재물을 사용 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소유 중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비율은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가진 소유와 재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까? 십일조 내고, 주일 헌금 내고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다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 괜찮은 것일까요? 정말 그게 전부 일까요? 꼭 교회에 헌금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가진 소유를 통해 복음을 모르는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서 불러서 밥 한 번 사 주고, 외로운 이웃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서 나눠주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옆에서 누가 굶던지, 옆에서 누가 괴로워 하던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나만 복 많이 받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식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 시작부터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굶주린 이웃들을 불러 먹이는 사역부터 시작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나눔과 성숙한 믿음의 열매들이 일어나자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기 시작 했습니다. 많은 영혼들이 교인들의 나눔과 섬기는 모습을 보고,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은 무언가 다르다”하고 인정할 정도 였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사야 선지자가 쓴 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몇 일씩 굶어가며 기도 했습니다. 고개 숙인 갈대처럼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고, 까칠까칠하고 불편한 베옷을 입고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 58:5) 그런 금식은 내가 바라는 금식이 아니다. 사람이 그런 식으로 스스로 자기 몸을 괴롭히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 앞의 풀잎처럼 머리를 숙이고 거친 베옷을 입으며, 재 위에 앉는다고 해서 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금식이 되겠느냐? (사 58:6) 내가 바라는 금식은 너희가 부당하게 가두어 놓은 사람을 풀어 주고, 그들의 사슬을 끊어 주며, 억눌림 당하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그들이 하는 고된 일을 쉽게 해 주는 것이다. (사 58:7) 너희 음식을 굶주린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을 너희 집에 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보면 그에게 너희 옷을 주고, 기꺼이 너희 친척을 돕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경우, 기도하고 말씀 보고 예배 자리에 오는 것만이 기독교의 전부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재물이나 물질을 통해 가난한 형제, 자매들을 위해 사용하고, 이웃들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입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으로 완성 됩니다. 참 사랑은 언제나 나눔이 있고, 희생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내 삶을 희생하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것은 거짓 사랑이지 참 사랑일 수 없습니다.
8절 말씀을 읽지 않았습니다만 함께 읽겠습니다. “(민 35:8) 이스라엘 자손의 산업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얻은 자에게서는 많이 취하여 주고 적게 얻은 자에게서는 적게 취하여 줄 것이라 각기 얻은 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땅을 주신 지파들은 레위인들에게 많은 성읍들을 주고, 적은 땅을 얻은 자들은 적게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에도 동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신 자에게는 많은 섬김과 나눔을 요구하십니다.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의 사람들을 다 도와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금 내 곁에서 힘들어 하고 있는 그 형제, 그 자매, 나의 이웃들에게 내 삶을 나누어 주는 삶을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육지로 둘러 쌓인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고 다른 하나는 사해 입니다. 이름은 바다 입니다만, 사실 아주 큰 호수인 셈이죠. 갈릴리 바다는 담수여서 물고기가 많이 삽니다. 베드로가 배가 잠기고 그물이 터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던 바다가 바로 갈릴리 바다 입니다. 갈릴리 바다 해안에는 많은 수목들이 수면 위로 가지를 뻗고 있고 그 나무들에 여기저기 화려한 꽃들이 피어 있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새들이 모여 지저귑니다. 그에 비해 사해 바다는 아무런 생명도 없습니다. 이 주변에 나무 하나 없고 새 소리 조차 들을 수 없습니다. 사막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도 사해에는 물 마시러 오질 않습니다. 이 두 바다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일까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자신이 받은 물을 요단강을 통해 흘려 보냅니다. 그리고 그 요단강의 물이 사해 바다로 흘러 갑니다. 그러나 사해 바다는 물을 흘려 보내는 곳이 없습니다.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내보지 않고 모든 물을 움켜지고 있는 셈이죠. 자신의 물을 흘려 보낸 갈릴리 바다는 풍성하고 비옥한 바다가 되었지만,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던 사해 바다는 결국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된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그 동안 우리가 가진 물질은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주변에 우리가 도와줘야 할, 나의 나눔이 필요한 이웃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과 은혜를 죽음 바다처럼 움켜지고 있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고 섬기십시오. 그리할 때 더 많은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흘러 오고, 우리의 나눔을 통해 기운을 얻은 사람들과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이처럼 풍성하고 넘치는 나눔과 섬김을 통해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