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2 (특별새벽예배 [벧엘로 돌아가라 시리즈 (3)]) 벧엘로 올라가기 전 버려야 할 것들 (창세기 35장 2-4절)

절박한 위기에 빠진 야곱, 그는 하나님을 찾아갔습니다. 야곱은 문제 해결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영적인 관계 회복을 먼저 명령 하셨습니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고 어려움이 닥쳐오면 기도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만을 위해 기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더 깊숙한 차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 상황을 통하여 주의 백성들이 주님과의 바른 관계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삶에 고난이 찾아왔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시고 계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 가운데 내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지, 어디서부터 신앙생활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진찰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단을 쌓으라 말씀하셨고,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 서도록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야곱은 자신이 거룩하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준비를 하며 먼저 자신의 식구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2절에 “자기 집 사람”이란 표현은 그의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라는 표현은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모든 노예들을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는 하란 땅에서 합류한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누구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정결해지는 일에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이에 야곱은 자기 식솔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죠.
야곱은 이들에게 하나님께 단을 쌓으러 벧엘에 가기 전 세가지 일을 지시 합니다. 첫째는 이방 신상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의복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이 세가지를 통하여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영적 원리들을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야곱은 그의 가족들과 식솔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야곱 가족이 이방 신상을 가지고 산 지가 벌써 십여 년이 넘었습니다. 그의 아내 라헬은 아버지 집을 떠날 때 드라빔이란 우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우상을 섬기는데 아들들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2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이방 신상’은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해석하면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상들을 치워 버려라!”고 되어 있는 것이죠. 우상이 한 두개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상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지난 십 여년 동안은 우상과 함께 산 것이 문제가 안 되었는데, 이제서야 야곱은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말했다는 사실 입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야곱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보니까,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죠. “아,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상이 있었구나?” 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그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살아가기 위해 이전에 사랑했던 죄를 과감하게 버립니다. 야곱도 이제까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우상들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다 버린 것이죠.
우리가 버려야 할 마음의 우상이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 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돈을 의지하고 살면 돈이 내 우상이 되고, 재물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면 재물이 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가족이 벧엘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방 우상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이방 신상들을 정리했습니다.
둘째로, 야곱은 그의 가족과 가솔들에게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앞서 이방 신상을 제거한 것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한 대상을 제거한 것 입니다. ‘정결케 하라’는 말씀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더러워진 마음을 씻어내고 회개하라는 뜻 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마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교만함을 깨트리라는 말씀 입니다. 특별히 본문 2절에서 ‘정결케 하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스스로 정결케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청결케 하기 위해 죄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기억 하십시오. 모든 기도가 하나님 앞에 닿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품고, 죄악을 회개치 않은 자의 기도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그릇된 관계를 청산하고 깨어진 화목을 회복하는 사람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닿는 것입니다. 기도하려는 모든 자들에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것이 마음을 청결케 하는 일 입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셋째로, 야곱은 그의 가솔에게 의복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의복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갈아 입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전에 더러운 행실, 불신앙의 습관들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만나로 가기 위한 거룩하고 경건한 행실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회개하지 말고, 실제로 삶의 변화를 통해 회개의 진정성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릇된 삶의 모습들, 죄악 된 삶의 습관들이 깨지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은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기 옆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 정도면 신앙생활 잘 하고 있지.”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던 바리새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죄 안 짓고, 저 세리와 같지 않은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 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저 멀리서 기도하던 세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떠올리며 차마 하늘도 보지 못한 채 “하나님 이 놈이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바리새인이 아닌 이 세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는 평가를 받고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들의 모습이 바리새인 같지는 않습니까? “나 정도면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것 아니야? 하나님 저 정도면 된 것 아닙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의 죄인이냐 의인이냐의 기준은 이 세상에서의 기준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기준 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때마다 할 수 있는 대로 겸손하게 우리 자신의 자신 안에 있는 더러움과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했던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 했습니다. 더러워진 양심과 마음을 정결케 하라 했습니다. 죄악 된 행실로 인해 더러워진 의복을 벗고, 거룩한 행실을 위한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 입으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벧엘로 올라갈 준비가 되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서 계실 준비가 되 있으십니까? 우리가 악하고 거짓될 때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 또한 거짓이 될 뿐 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로 보배로운 피로 정결케 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삶에 임하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영적인 부흥을 갈망하며 우리 안에 더러운 모든 죄악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