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1 (특별새벽예배 [벧엘로 돌아가라 시리즈 (2)]) 벧엘로 올라가자 (창세기 35장 3절)

야곱은 일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그의 딸 디나는 세겜 사람에게성적으로 유린 당했고, 현재 그의 사방에 놓인 가나안 족속은 적으로 돌변해 있습니다. 당장 오늘밤 적군의 습격으로 인해 야곱의 가정이 몰살 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입니다. 그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그는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지난 10 여년 간 세겜 지역에 거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고 미지근하게 신앙 생활하며 하나님 믿는 둥, 안 믿는 둥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발에 불똥이 떨어지자, 야곱의 잠자던 영혼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 합니다. 급류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만일 그의 삶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는 이토록 간절히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찾아온 고통은 성도의 영혼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wake-up call’ 입니다. 고통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시고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께서, 다시 주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영혼의 경적 입니다.
고통에 빠진 야곱은 그제서야 지난 10년 간의 영적 정체기를 벗어 버리고, 드디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인생의 문제 속에서 찾아간 하나님, 주님은 그런 야곱에게 당장 문제 해결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야곱아, 너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요구하신 말씀은 단순 명료 했습니다. 단을 쌓으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다시 서라는 말씀 입니다. 하나니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교만을 벗어 버리고, 주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다시 나아오라는 말씀 입니다. 이처럼 고난 중에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먼저 그가 무너진 예배의 삶을 회복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지금 내 앞에 닥친 문제만을 해결하는데 집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로 인해 단절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암 전문의사가 지금 당장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진통제를 주지 않고, 그의 병의 근원인 암 조직을 제거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길 같아도, 가장 빠른 길이요, 가장 확실한 길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세상 죄가 만연한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세겜이 아닌 벧엘에다가 단을 쌓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겜에도 야곱이 쌓은 단이 존재 합니다. 이 단은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와서 처음 쌓은 기념비적인 단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겜이 아닌 벧엘에 가서 다시 단을 쌓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속 문화가 강한 세겜 땅에 있는 단은 더 이상 야곱의 삶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과거의 은혜는 과거에 필요했던 것이고, 이제는 새로운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은혜를 주시기 위해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자가 이전 과거에 받은 은혜로 오늘을 또 다시 살아 갈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왜 우리가 어제도 기도하고 그 전에도 기도 했는데, 오늘 이렇게 또 나와서 기도하고 말씀 보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까?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제 만나를 먹으러 광야로 나왔어도, 오늘 또 다시 만나를 먹기 위해 아침 일찍 들판으로 나가야 했던 것처럼, 날마다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선한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은 2인칭 단수로 말씀 하셨습니다. “야곱아 너희 가족이 다 올라가라”가 아니라, “야곱아 네가 올라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적 부흥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 한 두 사람, 혹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 됩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부흥은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불꽃을 옮겨 받고 영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을 통해 부흥의 역사는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는 뭔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위대한 일이 시작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사람이 많은 곳이 부흥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곳을 보지만, 하나님은 전심전력으로 주님을 찾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영국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한 사람, 그가 곧 다수다.” 기도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부흥의 역사는 시작 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은 기도의 위대함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한 사람의 기도는 홍해를 갈랐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한 사람의 기도가 하늘에서 불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한 사람의 기도가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도 멈추게 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목사님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설교가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도의 사람이 되고자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 입니다.
창세기 35장 1절을 통해 야곱은 개인의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부흥이 오늘 3절에 와서 그의 가정의 부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 한 사람에게 심겨 주신 영적 부흥의 불꽃이 그의 집안으로 옮겨 붙은 것입니다. 믿음은 불꽃 입니다. 기도도 불꽃 입니다. 오늘 야곱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그의 가정을 변화시켰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기도가 전 세계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영혼은 아직도 세겜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어서 하나님께서 가라 말씀하시는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마시고, 하나님 붙잡고 사는 일에 전심전력하여 달려 가십시오. 치열한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불꽃 같이 타오르는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의 영적 변화가 곧 가정이 사는 길이요, 교회가 사는 길 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한 사람의 기도는 능력이 있고 역사를 이루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