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3 하나니의 길이 아니면 돌이키라 (민수기 22장 21-41절)

사자성어 중에 ‘인생행로’라는 말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 평생이 마치 나그네가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말 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는 사람 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 중 어떤 길을 걸어가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길’이 나옵니다. ‘의인의 길’, 죄인의 길’, ‘선한 길’, ‘생명길’, ‘마땅히 행할 길’, ‘음부의 길’ 등 길에 대한 말씀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길을 가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택해야 하는 인생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지 그 결과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한 번 택하면 길을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결정할 때 신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죄의 길에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닌, 하나님께서 막으신 길로 나아가는 거짓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술사 ‘발람’을 자기에게 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모압 왕에게 가지 말고, 또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모압 왕이 보낸 많은 재물에 눈이 멀어 귀족들을 따라 모압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막으신 길로 가게 된 것이죠.
지금도 세상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발람처럼 재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을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닌, 물질을 따라 살아가는 탐욕의 길은 곧 패망하는 길입니다. 재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께서 막으신 길을 가게 된 발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지금 당장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의 목소리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에서 욥이 고백 했듯이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아시고 나의 걸음까지 다 세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불의한 재물을 따라가는 자는 망합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결국 패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발람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분명히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 앞에 보이는 많은 재물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서울 남산에 가면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동상 옆에는 안중근 의사이 살아 생전에 친필로 남긴 글을 큰 바위에 새겨 놓았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견리사의.” 이 말은 “이익을 볼 때 의를 생각하라”는 뜻 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기회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면, 의로움을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것입니다.
어느 따뜻한 오후, 한 사람이 호도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습니다. 그는 옆에 있는 호박덩쿨을 보면서 명상에 잠겼습니다. “하나님은 참 어리석으셔. 땅 위에 기는 가냘픈 덩굴에다가는 저렇게 큰 호박을 만드시고, 이 튼튼한 호두나무에는 저렇게 작은 호두를 열매로 주시다니… 만약에 내가 하나님이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거야. 저 튼튼한 호두나무에서는 호박같이 큰 열매가 열려야지.” 이렇게 누워서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두 열매 하나가 떨어져서 이 사람의 이마에 딱 하고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란 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엎드렸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만약 이 나무에 호박이 달렸다가 떨어졌으면 저는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보다 더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바뀐거죠.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로 다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거기에는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 깊으신 뜻이 있음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뜻이 있으시겠지. 나는 몰라도 나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결과를 주시기 위해 이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겠지?” 하고 믿음으로 주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 이해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며 다 설명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설명해도 아이가 어리고 지혜가 부족하여 다 깨닫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깨닫지 못해도 자녀의 유익을 위해서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뜻을 다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지혜로우신 분임을 인정하며 주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게 이익이 되는 길, 내가 이기는 길을 찾아 그 길을 걸으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내 이익 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이기는 길 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불의한 선지자 발람은 재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한 채 자신의 탐욕의 길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탐욕의 길을 따라간 발람은 패망 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승리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길은 가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길이 아니란 것을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면 어서 돌이키십시오. 어떤 대가와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돌이키십시오. 그것만이 우리의 영혼이 사는 길 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탐욕의 길, 정욕의 길, 죽음의 길을 버리고 우리 삶의 방향을 돌이켜서 옳은 길, 바른 길, 순종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