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8 발락이 두려워 점술가 발람을 부르다 (민수기 22장 1-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여정 중에 있습니다. 수백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가 한 번에 움직이다 보니, 인접 국가들은 혹시 이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자국 영토에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이 유입되어 오는 것을 정책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난민들 가운데 폭력, 도둑질 등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그 중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2백만 명이 넘는 난민이나 마찬가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경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인접 국가들이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던 것이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접 국가들의 국경을 통과해 왕의 대로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만, 그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의 대민족이 자기 영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경 지대 분위기가 매우 살벌합니다.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만한 분위기가 조성 되어 있는 것이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한 아모리 사람들은 선제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아모리 군대를 무찌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그 옆에 있던 바산 군대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멸살 당하고 맙니다. 아모리 사람들은 전투에 능한 사람들이었고, 바산 사람들은 철기문화를 가진 거인족이었습니다. 전쟁에 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강한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무찔렀으니, 이스라엘의 승전 소문이 날개를 단 듯 거침 없이 주변 국가들에게 퍼져 갔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해 올라오는 동선을 그려 보면, 그 다음 이들이 통과해야 하는 곳은 모압 땅 입니다. 따라서 모압 사람들은 아모리와 바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을 듣고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돔, 모압, 압몬 이 세 족속과는 전쟁을 하지 말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 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로부터 시작된 민족이며, 모압과 압몬 두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이며, 각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 머물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서 신명기 2장 9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게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압과 다투거나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모압 사람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모압 왕은 엄청난 숫자의 이스라엘이 아모리와 바산 왕을 차례로 무찌르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이 당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발람이란 이름을 가진 점쟁이가 있었습니다. 모압의 왕인 발락은 이 거짓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할 생각으로 그에게 많은 뇌물을 발람에게 보내어 그를 고용하려 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많은 뇌물을 주며 점쟁이 발람에게 청탁한 내용이 5-6절에 있습니다. ‘(민 22:5)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민 22:6)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 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지금 이 장면을 쉽게 이해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기 위해서 모압 왕이 용한 무당 찾아가서 값비싼 복채를 주며 굿이라도 하고 부적이라도 써달라는 거죠. 그런데 여기 6절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모압 왕 발락이 점쟁이 발람에게 요청하며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발락은 축복과 저주의 근원이 발람의 입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영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복과 저주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거짓 무당이요, 점쟁이인 바람의 입에서 복과 저주가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는 자가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자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를 받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하려는 사람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됩니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하나님의 자녀나 주님의 피 값으로 사진 교회를 저주 했다가는 자가 자신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받을 복도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그 복을 받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압 왕 발락이 점쟁이를 고용해서 저주하던 것을 이스라엘은 전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저주를 막아 주시고, 도리어 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 어떤 사술도 우리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무당도 점쟁이도 우리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부적도 그럴싸하게 들리는 주문도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그 어떤 저주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복과 저주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발락처럼 자신의 두려운 문제를 무당과 점쟁이를 통해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 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떤 두려움에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능력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 때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에 귀한 은혜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