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6 붉은 암송아지 잿물, 부정을 정결하게 (민수기 19장 1-10절)

죽음이란 죄의 결과 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부정한 것이며, 구약 성경은 인간이나 동물의 사체를 만지는 자는 부정해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록이 있기 전 바로 앞에 고라 자손의 반역과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을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 중 약 15,000 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많은 시신들을 그냥 진영 내에 둘 수는 없습니다. 장례를 치뤄야 하고, 시신을 옮겨 진영 밖에 묻어야 했습니다. 심판으로 인해 죽은 자의 숫자가 15,000명 이니 이스라엘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장례식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죠. 이 장면을 머리 속으로 그려 봅시다. 이 대규모 장례식에는 엄청난 숫자의 인파가 참석 했을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유족들과 친구들 이웃들도 함께 참여 했을 것입니다. 물론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시신을 만졌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시신을 운반하는 자는 물론이고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며 그를 만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율법의 기록대로 죽은 자를 만진 자 역시 부정해 집니다. 마치 전염병이 퍼져 가듯이 주검으로 인해 부정케 된 자들이 성막에 접근하거나 부정한 상태로 이스라엘 진영에 머물기만 해도 진영 뿐만 아니라 성막까지 부정해지는 심각한 상태 입니다. 또한 부정케 된 자와 접촉한 사람까지도 부정해 집니다. 계속해서 그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이죠.
전염병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그냥 놔두면 한 나라가 망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한국도 얼마 전에 중동호흡기증후군 일명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퍼져서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5년 첫 환자가 발생하여 3년 만에 전국을 강타하였습니다. 격리 된 환자 숫자만 약 17,000 명이나 되었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총 38명이 죽었습니다. 마치 한 두 그루의 나무에서 시작한 병충해가 퍼지게 되면 산림 전체를 말살시키는 사태로 번질 수 있는 것과 같이, 만일 이대로 주검으로 인한 부정함을 놔두면, 부정함이 이스라엘 진영 전체와 성막까지 퍼져가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은 주검으로 인해 부정해 진 자들을 정결하게 할 위급한 필요가 있는 상황 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문맥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갑자기 “붉은 암송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요? 바로 이 붉은 암송아지를 태우고 남은 재가 주검에 의해 부정해진 자들을 씻는 정결 예식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진영 안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죽은 자들이 가득합니다. 따라서 민수기 19장에는 주검을 가까이 하거나 주검을 만짐으로 인해 부정해진 자들을 정결케 하는 데 사용되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주검을 만져 부정하게 된 자를 치료하는 영적 백신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명하여 정결 예식을 위해 사용될 붉은 암송아지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붉은 암송아지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먼저 암송아지는 온전하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또한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매 본적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면 온전하고 흠이 없는 것을 요구하신 것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하는 예식에 거룩하게 사용하시는 것이니 당연히 온전하고 흠이 없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왜 멍에를 한 번도 매어 본적이 없는 암송아지를 요구 하셨을까요? ‘멍에’란 나무나 쇠로 만든 장치로 짐승의 목에 끼워 쟁기를 연결해 소로 하여금 밭을 갈도록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실은 수레를 이동하도록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멍에를 맨 소는 목에 상처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멍에를 매지 아니한 소만이 온전하고 흠이 없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 하나님께서 멍에를 매어 보지 아니한 소를 요구하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멍에’라는 것은 죄를 지은 인간이 죄에게 ‘속박 당하고 노예가 된 상태’를 상징하는데 사용 됩니다. 따라서 멍에를 매지 아니한 소는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한 존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죠. 따라서 2절 말씀에서 “온전하고 흠이 없고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매 본적 없는” 암송아지를 가져다가 정결 예식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흠이 없고 순결하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존재만이 우리의 부정함과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오신 정결하고, 흠이 없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온전하고 흠이 없고 멍에를 매 보지 않은 암송아지의 재로 백성들을 정결하게 한 것처럼, 우리는 신약에서 흠이 없으시고 완전하시며,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죄 사함을 얻은 것이죠.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정한 자를 위해 희생 당하는 붉은 암송아지는, 우리 죄인들을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이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다가 진영 밖에서 잡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4절에 보니 제사장 엘르아살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시기 전 먼저 죽음으로 인해 더러워진 성막을 정결하게 하는데 사용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이 죽임을 당한 짐승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회막에 일곱 번 뿌림으로 말미암아 이 짐승이 속죄 제물이 되어 부정한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민 19:9) 이에 정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만드는데 쓸 것이니 곧 속죄제니라” 정결 예식을 위해 잡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울 때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넣어 함께 불태웠으며, 다 타고 남은 재는 시체를 만져서 부정한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발생할 때마다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정한 죄를 씻기 위해 멍에를 져 본적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야 했던 것처럼, 죄의 멍에를 지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씻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직 정결한 자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의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걸음 입니다. 예수께서 우를 죄의 멍에로부터 자유케 하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쏟으신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번 붉은 암송아지를 다시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가진 효력은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시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붉은 암송아지의 잿물로 부정함을 벗어 버리고 다시 정결하게 하나님께 나온 것과 같이, 오늘 이 시간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피, 보배로운 피,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정결 해질 수 있습니다. 그 어느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영혼을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으시기 바랍니다. 정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아침 유일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