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8 향로를 가져다 그들을 위해 속죄하라 (민수기 16장 36-50절)


제단에 있는 불을 향로에 담는 일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사역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사장직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자손들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론의 계열이 아닌 고라와 그의 반역에 동참한 족장 250명이 향로에 불을 담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에 향로에서 불이 나와 250명 모두를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향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막에서 쓰인 번제단의 불을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는 도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경의 다른 곳을 살펴보면 향로를 가리켜 “불똥 그릇” 혹은 “불 옮기는 그릇” 또는 “화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역자들이 불에 타 죽을 때 들고 있던 ‘향로’는 본래 성전에서 사용된 성물이 아니라, 각 개인이 들고 온 것입니다. 비록 250명의 반역자들이 제사장의 자리를 노리고 잘못된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향로를 들고 있었으나, 향로는 이제 하나님께 바쳐진 성물 입니다. 3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명하사, 그에게 반역자들이 들고 있던 향로를 가져다가 그 안에 있는 불은 다른 곳에 쏟으라 하셨습니다. 반역자들이 하나님께 바친 불을 버리심으로 하나님은 이들의 잘못된 제사 역시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250인의 반역자들이 들고 있던 향로는 이미 여호와 앞에 가지고 온 바가 되었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선언하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엘르아살에게 명하셔서 놋으로 만들어진 250개의 향로를 두드려서 넓은 판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제단 주변을 감싸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론의 자손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을 감싸고 있는 편철을 보고, 다시는 반역자 고라의 무리와 같이 제사장 직분을 넘보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시각적 교육 자료로 사용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내용이 39-40절 말씀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민 16:39)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탄 자들의 드렸던 놋 향로를 취하여 쳐서 제단을 싸서 (민 16:40)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외인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 무리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하나님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자 고라의 무리처럼 제사장 자리를 넘보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향로를 펴 만든 편철을 사용하신 것이죠.
독일에는 과거 나치 시대 때,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강제 수용소를 기념관으로 재탄생 시킨 관광 명소들이 있습니다. 사실 독일인들 입장에서 보면 나치의 역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오늘날까지 독일이 지탄을 받는 오점이고, 지우고 싶은 역사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인들이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 기념관을 세운 이유는 “나치즘이 일으킨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굳은 다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똑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난 과거의 흔적을 기억하겠다는 것이죠.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올해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방문하여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를 잊지 말자고 강조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번제단 사면에 편철을 세우신 이유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고라의 반역 사건과 그들의 죽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증거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제사장과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지 말 것을 강조하며 말씀하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죄로 인해 심판과 벌을 받고 백성이 죽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여기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도록 그들을 교육하고자 하신 것이죠.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혹시 제단을 둘러싼 저 편철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짓지 말라고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삶의 영역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보여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얼른 죄에서 돌이키고 주님께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그 죄로 인해 망하지 아니하고, 벌을 받지 않도록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계신 것이죠. 이러한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죄가 죄인 것을 깨달았을 때, 지체 없이 빨리 주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참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의 이러한 깊은 사랑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41절 말씀을 보십시오. 고라와 반역자들이 불에 타 죽은 바로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이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분명 고라 무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이죠.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비난을 모세와 아론에게 던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들도 반역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사실 때문에 모세와 아론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여태까지 함께 광야에서 생활해 온 동료들이 죽게 되자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슬픔도 이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데 한 몫 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땅이 반역자들을 삼키고, 향로에서 불이 나와 반역자들을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그 직접적인 원인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림으로 그들이 사적인 감정과 정치적인 이유로 250명의 족장들을 죽였다고 매도하며 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한 근거 없는 막무가내 원망과 불평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 하셨습니다. 44-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16: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45)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게 진노하셨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예 단 번에 지면에서 없애 버리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진중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져 갔습니다. 강한 바람에 초원의 풀이 눕듯이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염병에 하나 둘 툭툭 쓰러져 죽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재앙의 염병이 시작된 것이죠.
여기서 우리 모세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거듭 끝없이 나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자신과 형 아론을 욕하며,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왔냐고 소리 지르는 백성들 입니다. 게다 이제는 반역자 무리가 죽은 사건에 대해서까지 자신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살인자라고 비난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막힐 노릇 입니까? 모르긴 해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보면 모세도 속으로 분이 나고 억울함에 화도 많이 났을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욕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 “고소하다. 잘 됐다. 날 욕하더니 어니 한 번 신나게 당해봐라! 아파봐야 제 정신 차리지!”하며 백성에게 임하는 심판의 현장을 지켜 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란 사람은 마음 속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한 백성까지도 끝까지 품고 용서할 줄 아는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46절에 모세가 자기 형 아론을 부릅니다. 4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민 16:46)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전염병으로 인해 백성들이 죽어가자, 모세는 아론을 명하여 급히 향로에 불을 담고 백성들에게 가지고 가 그들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대신 죄사함을 구하라고 당부합니다. 46절에 ‘급히’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비록 자신을 욕하고 비난한 백성이지만, 그래도 모세는 이 일에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로 모세를 뽑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 아량이 넓은 사람 입니다.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이 용서의 넓은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 아론도 마찬가지 입니다. 47절 말씀을 보니, 그는 모세의 명대로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 달려갑니다. 아론이 나이가 여든이 넘은 노인이라는 것을 염두 해 주십시오. 그러니 그도 백성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달리고 있는 것이죠. 이미 죽음의 염병은 시작 되었습니다. 수천 명이 전염병으로 인해 픽픽 쓰러져 죽어갑니다. 이 다급한 상황 속에서 아론은 백성들의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기 위해 향을 피웠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론이 염병으로 인해 죽은 자와 아직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도달한 순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재앙의 염병이 그쳤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일로 인해 죽은 자의 숫자가 무려 14,700명 (만 사천 칠백 명)이나 됩니다. 이 희생자의 크기는 어마어마한 숫자 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동안 전쟁을 겪으며 치뤄 온 희생자의 숫자보다 더 큰 숫자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십의 권위에 대항하고,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패역한 무리들에 대한 진노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감정에 휘둘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아론을 비난 했다가 큰 화를 당했습니다. 그에 비해 모세와 아론은 한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속죄하여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비난하고 죽이려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와 아론처럼 우리를 해하려 하는 자들을 위해서까지도 은혜를 구함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구원을 베푸신 사랑을 닮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상대방을 원망하고 비난하고 죽이는 삶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도구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