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6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민수기 16장 12-24절)

레위 지파 사람 고라는 아론의 후예들만 제사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에 고라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세와 아론에게 적대심을 품은 족장들 250명과 함께 반역 세력을 일으켰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직분과 사명을 망각한 채 아론의 제사장직을 노리는 고라를 책망 했습니다. 고라와 같이 모세와 아론에 대해 반역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고라와 함께 반역에 참여한 또 다른 주동자들인 르우벤 지파 사람 ‘다단과, 아비람을 호출하면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호출에도 불구하고 단칼에 올라가기를 거절 합니다. 이들은 모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명령에 불복종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본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13절에서 다단과 아비람이 말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땅을 의미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 결과 척박한 광야에 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단과 아비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광야에 비하면 애굽이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음을 비꼬아 말하고 있는 것이죠. “모세여, 애굽 땅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들을 데리고 와서 광야에서 죽게 만드는 것이 작은 일 입니까? 어찌 당신은 우리들 위에 왕이 되려고 합니까?”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간 세월이 광야에서보다 조금 더 잘 먹고 조금 더 편안했음을 상기하며 애굽에서 보내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이죠. 이 가운데는 자신들을 광야로 이끌고 나온 모세와 아론에 대한 책망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13절에 ‘왕’이란 단어는 영어 성경에 ‘왕자’란 단어로 해석되었습니다. 원문을 보면 ‘통치자’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도망자가 되어 광야로 쫓겨나기 전에 한 때는 애굽에서 왕자로서 백성들을 통치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다단과 아비람이 사용한 ‘왕’이란 단어는 고의적으로 모세의 심기를 건드는 단어 입니다. “모세여, 애굽에서 왕자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이 백성을 광야로 이끌고 우리들 가운데 왕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모세를 악한 통치자요, 독재자처럼 묘사했습니다.
모세를 향한 이들의 비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민 16: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여기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 땅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마치 모세와 아론의 책임인냥 그들을 비난합니다. 14절에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는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모세 당신이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 아닌지 우리도 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당신은 우리가 눈이 빠진 장님, 봉사 취급을 합니까?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의 사기 행각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속임수에 더 이상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사실에 대하여 모세를 강하게 비난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난 후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하나님은 이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지내도록 심판하신 것이죠. 그러나 다단과 아비람은 이 모든 것은 모세 때문이라고 그를 탓하고 있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의 비난을 들은 모세는 크게 분을 냅니다. 15절 말씀에 “모세가 심히 노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심히’라는 부사는 모세의 분노가 얼마나 심한것인지를 나타냅니다.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에게 비난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비난하는 내용은 다 틀린 것이며, 저들이 지어낸 이야기며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어제 새벽예배 때 우리는 고라의 비난을 들은 모세가 어떻게 행동 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민수기 16장 4절 보시겠어요? “(민 16: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모세는 고라 자손의 비난에 맞대응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늘 위기의 상황 가운데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위기에 닥치면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 놓이면 당장이라도 상대방을 찾아가 오해를 풀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삶 앞에 닥친 문제 앞에서 지혜의 근본이시요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자이신 하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가진 강점 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 패턴이 보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를 비난하자 모세가 어떻게 행동합니까? 15절 보십시오. “모세가 심히 노하여…” 그 다음 무엇 합니까? “여호와께 여짜오되…” 15절 말씀은 한글 성경과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많은 리앙스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모세가 분노가 가득한 상태로 하나님께 말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심히 노한 것과 여호와께 아뢴 내용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원어 성경인 히브리어로 보면 2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5절을 다시 해석하면 이렇게 해석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심히 진노했다. 그러나 여호와께 말씀 드렸다.” 분명 너무나도 억울한 상황 입니다. 분이 심히 차올라 얼굴이 붉어지고 혈압이 오르는 순간 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모세는 매우 화가 나고 감정적으로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진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세는 상대방의 근거 없는 비방에 대해 직접 해명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토로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섭섭하고 억울한 감정 있으면 상대방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의 억울한 사연과 심정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어난 문제에 대한 해결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특별히 15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모세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부탁 드리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분을 내며 상대방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 주려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 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겪거나 억울한 상황에 몰리게 되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인 대응은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고했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나보다 더 지혜로우시고, 상황을 더 잘 해결해 주실 힘과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임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현재 어떤 문제 앞에 놓여 있습니까? 우리 삶에 찾아온 억울한 상황 혹은 위기의 상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일을 처리하려고 너무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인간적인 방법으로만 애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억울한 일, 위기의 문제를 당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릴 수 있는 모세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깊은 웅덩이와 기가 막힌 수렁에 빠진다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강한 손을 펼치사 우리 손을 붙잡아 주시고 반드시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