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2 관행의 죄를 끊어 버리다 (민수기 15장 22-24절)

얼마 전에 한국에서 자신이 시무하고 있는 교회의 헌금 횡령과 배임 문제로 대법원까지 갔던 한 교회 목사님의 항소문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대법원에 항소한 내용을 읽어 보면 자신이 해온 일은 “교회 관행”이었다는 논리였고, 그로 인해 자신은 무죄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앞을 지나간 다른 사람들도 동일하게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 해왔으며 자신은 그 전철을 밟은 것에 불과하기에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 입니다.
과연 ‘관행’을 따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교회의 관행을 따랐을지라도, 헌금을 횡령하고 배임의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당연히 죄 입니다. 전통이 긴 공동체 일수록 ‘관행’이 자리잡기 시작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관행이 우리의 신앙적 양심을 속이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죄, 즉 ‘관행’처럼 여겨지던 죄를 청산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15:23) 곧 여호와가 모세로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여호와가 명한 날부터 이후 너희의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여기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관행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23절 말씀을 보니, “모세로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여호와가 명한 날부터” 지키지 못한 말씀 들 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순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 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우리도 삶 속에서 이런 ‘관행’의 영역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해지는 수많은 불의한 관행들을 발견하게 되며, 우리들도 이러한 관행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잖아.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예전부터 원래 이런 식으로 해 왔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행해 왔기 때문에 죄를 죄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관행’에 대해서 회개하고 속죄함 받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이야기 하고, 거부하는 삶을 택하기를 원하십니다. 관행의 고리를 끊고, 관행이라 불리는 모든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주님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물결을 따라 수영하는 사람은 물살이 얼마나 거센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물결을 거슬려 수영을 하려고 하면 그제서야 물살이 얼마나 거센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물결에 따라 살면 세상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세상과 다르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면 불편과 어려움을 감소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 찍히며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유별난가?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다 조용히 눈 감고 하는 일인데 왜 자네만 그렇게 꼭 튀어야 하는가?”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당해야 하는 수모도 겪게 됩니다. 관행의 고리를 끊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수많은 희생을 겪어야 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노예제도가 성행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들을 살고 파는 노예시장은 크게 성장하여 영국 국가 전체의 경제력에 영향을 미칠만큼 큰 파급 효과를 가져 왔습니다. 국가 재정수입의 1/3이 노예매매무역으로 충당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이 당시 노예제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영국 사람들은 노예매매는 물론 노예를 죽여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사람이 등장 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한다는 삶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예제도는 성경의 원리에 어긋난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관행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반대되는 죄악 된 행위라 규정하며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헌신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이 당시 영국의 미혼 여성 1/4이 매춘부 였고, 런던 사망자의 1/8이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정부 상층부는 이미 부패하였고 정부의 고위층들은 노예제도로 인한 큰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패해 버린 시국에 노예제도를 폐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윌버포스와 그의 동역자들은 일생을 바쳐 목숨을 걸고 노예해방과 사회개혁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윌버포스를 죽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협박 편지는 셀 수 없이 날아들고, 실제로 그를 죽이기 위한 살해 위협도 수차례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윌버포스는 포기하지 않고 노예해방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는 이렇게 영국의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요? 그가 노예해방운동에 헌신한 결정적인 동기 중 하나는,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를 노예제도가 거역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영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말은 하지만, 공공연히 노예들을 죽이는 관행을 저지르는 죄를 모습을 보고 이에 대한 정직한 반응은 노예제도 폐지란 결론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먼저 영국 사람들의 의식을 고치는데 주력 합니다. 노예제도가 죄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일깨워 주는 일에 헌신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보면 “회중이 부지 중에 그릇 범죄하였거든…”이란 말이 있습니다. 관행이 죄인 줄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면 속히 그 죄를 끊어내야 합니다. 그 죄는 더 이상 고의로 범하는 것이 아니라, 고의로 범하는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징계를 받게 됩니다.
관행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죄의 고리는 끊어야 합니다. 세상의 물결을 거스르는 삶은 반드시 많은 희생과 대가지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노력을 포기하고 죄악 된 관행에 동참한다면 하나님 보실 때 큰 죄를 지으며 사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한 세상의 악한 관행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 길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의 길입니다. 그 길이 지금은 좋아 보여도 망하는 길이요 죽음의 길 입니다. 그러니 좁은 길로 가기를 힘쓰십시오. 찾는 이는 적고 가는 길은 험하고 멀어도 그 길 끝에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죄악 된 관행을 끊고,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