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1 모든 백성이 부름받기를 원하다 (민수기 11장 24-35절)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 노릇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영적 지도자 모세를 따라 광야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우리를 왜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는가? 우리를 굶어 죽이려고 한 것인가? 누가 이 광야에서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는가?” 이러한 백성들의 불평을 듣자, 모세의 마음도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제 더 이상 자기 혼자서는 이 백성을 인도해 갈 수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상황을 보시고, 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할 동역자들을 세워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 지도자가 될만한 자 70명을 회막으로 모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백성들 중 장로 70명을 장막에 둘러 세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칠십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고, 그 결과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장로들이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한 젊은이가 모세에게 달려왔습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70명의 리더로 호명된 자 가운데 ‘엘닷’과 ‘메닷’이 두 사람은 장막에 나오지 아니하였으며, 자기 진영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 진영에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이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이 회막 앞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모세의 리더십에 반항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가 회막 앞으로 모이라고 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진영에 머물렀 있던 것이죠.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진영에서 예언하고 있는 ‘엘닷’과 ‘메닷’, 두 장로에 대한 여호수아의 과민 반응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28절 말씀 입니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리더십에 순종하지 않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리더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저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예언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여 저들의 예언하는 것을 금지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교회에서 장로나 안수 집사를 선출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아무래도 목사님의 목회철학에 동의하고 함께 교회를 세워 갈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동역 하시는 성도님이 가장 좋은 후보이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과 교회 당회가 하는 사역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세우면 교회에 분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께서 교회의 중요 직분을 세우는 일에 이 분을 세우자고 말한다면, 주변에 있는 장로님들이나 성도님들께서 목사님을 말리지 않았을까요?
지금 여호수아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내 주 모세여, 당신의 부름에 응하지도 않고, 회막 앞으로 나오지 않는 이 사람들이 예언하는 것 말리셔야 합니다! 그들이 백성의 리더로 세움 받으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지금보다 더 도전할 것 아닙니까?” 여호수아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2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수아야, 너가 나를 위해 시기하는 것이냐? 아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70명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사 그들이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한단다.
어찌 보면 이 사건 가운데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은 모세 본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여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진영에 남아 있던 ‘엘닷’과 ‘메닷’을 보며 괘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모세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자신이 홀로 독차지 하여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권위를 확고히 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더 선한 길임을 여호수아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국 경기도 분당에 신도시가 새워질 때 많은 교회들이 앞 다투어 교회 개척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마다 경쟁이 과열되어 성도들을 저마다 자기 교회로 모셔 가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 중에는 서로 교회를 헐뜯는 경우도 있었고, 가까운 곳에 또 다른 개척교회가 들어서려고 하면 반대하는 목회자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한 지역에 너무 많은 교회가 밀집 되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적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는 집단 이기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내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교회는 잘 되면 안된다’는 식의 생각은 매우 비 성경적인 태도 입니다.
실제로 어느 한국의 신도시에 가 보면 편의점 수보다 개척교회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도시에 개척교회를 시작한 목사님들의 전략이 ‘버티기’라고 합니다. 옆에 개척교회가 문 닫고 나가서 마지막까지 버티는 교회가 이기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리서치 결과 성도들은 그처럼 신도시에서 마지막까지 버텨서 승리한 개척교회로 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결국 그런 자세로 버티는 교회들도 다 문 닫는다는 거에요. 우리는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귀한 교회라면, 우리 이웃에 위치한 있는 교회들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소중한 교회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교회가 잘 안 되야 우리 교회가 잘 된다”는 생각은 잘 못된 인식 입니다. 이웃 교회들도 부흥하고 우리교회도 함께 부흥하여 서로 합력하여 도시를 바꾸고 더 나아가 더 많은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맞지 않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끝까지 홀로 버티는 교회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웃 교회의 아픈 소식을 들어도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좋은 소식까지는 아니어도, 저 교회의 분쟁이나 문제로 인해 우리 교회에 어떤 반사 이익이 있을까? 수평이동하는 성도들은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아닙니다.
부모 중 자녀가 셋이 있는데 하나만 건강하게 잘 커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잘 살면, 나머지 둘은 거지가 되든, 노숙자가 되든 상관 안 하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한 자녀의 행복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녀가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부모의 마음 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은 모든 교회가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원합니다. 자기 친형 사업이 망했는데 동생이 기뻐한다? 자기 누이동생이 이혼했는데 좋아라 한다? 가족의 불행을 보며 기뻐하는 것은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꼭 코너스톤 교회만 잘 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뛰어넘어 주를 믿는 모든 성도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그는 자신 한 사람에게 권력과 은사가 독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건강한 주의 백성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우리들도 모세처럼 이런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은 저 사람이 져야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잘 되야 나도 잘 된다는 Win Win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김 집사님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옆에 계신 박 집사님이 건강하게 신앙 생활해야, 나도 건강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의 특징은 ‘나’라는 한계와 틀을 뛰어 넘어 ‘남’을 볼 줄 아는 영적 안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 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의 능력으로 맡은 사역을 기쁘게 감당하도록 서로를 세워주고 기도해 줄 수 있는 모세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