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7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하랴 (민수기 11장 1-9절)

시내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격적으로 광야로 진입하게 됩니다. 광야는 땅이 척박하여 먹을 것이 매우 부족합니다. 당장 먹고 싶은 식재료들을 구하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불만과 불평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11장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죠.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자세 입니까?
하나님은 애굽에서 400년동안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힘들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만나’라는 이름의 양식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 드릴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게다가 하나님께서 친히 이 광야 길을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시니 얼마나 큰 은혜 입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그들의 삶에 임하는 놀랍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타깝게도 그 은혜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한다는 광야의 제한적인 현실이 매우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광야에서 여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오는 불안함과 피곤함… 지친 육신 속에서 짜증이 올라오며 거침 없는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나온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었다면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 주님께서 선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우리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 못 마땅하게 생각하며 불평이나 원망을 늘어놓는 것은 선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도전이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현재 내 자신의 삶에 여러가지 불만과 불평을 하나님께 늘어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민자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습니다. 두 부부가 새벽 일찍 일어나 밤 늦게까지 일하고, 맞벌이 하며 자녀들 키우고, 그 가운데 비즈니스 안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한달이 멀다 하고 펑펑 터지면 그것들 해결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힘겨운 삶이 마치 하나님 탓인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 악한 말을 쏟아내며 주님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큰 죄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하나님을 예배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부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병실에 누워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할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를 믿으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다윗은 아무도 없는 들에서 양을 돌보며, 때로는 원수를 피해 사는 도망자의 신분 속에서도 위대한 시편들을 작사 작곡하며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 멸망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한 선지자들이 있었고,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반응하며 일이 잘 풀리고 좋을 때는 예배하고, 상황이 힘들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하나님 원망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를 믿고 그 안에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사람이 참 믿음의 사람 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내 삶이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불만하지 않습니까? 혹 내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삶의 모습이 펼쳐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4절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 (민 11:4)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4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를 못 먹어서 ‘울고 있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고기 못 먹는 것이 울 일입니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앞으로 2-3년간 고기 못 먹는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고기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낙심이 될 수는 있어도, 성인이 고기 못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울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왜 울었을까요? 4절에 ‘탐욕’이란 단어에 집중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탐욕이 가득하니까 고기 못 먹는 사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너무나도 큰 결핍으로 느껴지는 거에요. 은혜가 풍성한 사람은 자신의 삶 속의 결핍도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은혜가 풍성하고,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한 분으로 풍성하면 비록 가난해도, 소유가 적어도, 심지어 몸이 아파도 행복하고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맘 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져도 여전히 자신이 갖지 못한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 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삶에는 많은 결핍과 환란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영혼에 하나님이 충만하니 그의 가난과, 도망자로서의 삶 조차도 그가 가진 행복과 만족을 빼앗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을 죽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비록 삶의 여러가지 결핍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생명의 근원되시며 은혜를 주시며 참 만족 되시는 하나님 한 분과 교제를 통해 얻게 되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갈망하기보다, 육체적인 만족과 탐욕을 채우는 물질을 더 사모 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들이 매우 불행하다고 느끼며 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울기까지 한 것이죠. 탐욕에 눈이 멀면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만나로 먹여 주시고, 필요할 때마다 반석에서 물도 나오게 하시고, 옷도 헤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도와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하랴?” 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평과 불만의 악한 말을 들으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 가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 두 가지 결핍이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난한다 한들, 내가 병들었다 한들, 영 죽을 날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탐욕이 가득하면 내게 없는 결핍이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하면 결핍은 보이지 않고, 주께서 주신 만 가지 은혜들이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음 속에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