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6 고향이 아닌 광야를 선택해야 할 때 (민수기 10장 29-36절)

요즘은 스마트폰에 GPS가 잘 되어 있어, 주소만 있으면 처음 운전해보는 길도 어렵지 않게 잘 찾아가 갈 수 있습니다. 종이 지도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대략적인 길을 찾을 수는 있지만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도 뺑뺑 도는 경우도 허다 했습니다. 그래도 손 안에 지도는 초행길을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한 번도 가 본 일 없는 먼 곳을 향해 떠나는 길에, 손에 지도도 없고, GPS도 없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내가 과연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마음도 불안하고, 가는 도중에도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이 길로 가는 게 맞나?” 자꾸만 의심이 들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손에는 GPS도, 지도도 한 장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소한 광야 여행에서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 하겠습니까? 다행히도 모세의 처가 집 사람들은 광야 길 눈이 매우 밝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처남 ‘호밥’에게 가나안 땅을 향해 가기 위해 광야를 건너가야 하는 자신들의 길잡이가 되어 달라고 부탁 합니다. 2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10:29)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의 등장하는 ‘호밥’을 모세의 장인 어른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사사기 4장 11절에 보면 ‘호밥’을 모세의 장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모세의 장인 이름은 “이드로” 입니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르우엘’ 입니다. 여러 문화가 한데 어울려서 살아가던 고대 시대에 두 가지 이름을 가진 것은 흔한 현상이었으나, 이름이 3가지인 것은 거의 드물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호밥’은 모세의 장인이 아니라, 모세의 장인이 되는 르우엘의 아들 호밥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모세가 자기 처남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죠. “처남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땅으로 이제 우리가 갈 것이니 자네 우리와 동행 하게나 그리하면 우리가 자네에게 잘 대접하겠네!” 모세의 간절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처남 호밥은 그의 요청을 거절 합니다. 30절 보세요. “(민 10: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호밥은 광야가 얼마나 험악한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낮에는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 빛이 머리 위에서 비추고, 밤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찾아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하고, 생존의 위기를 견뎌가며 살아야 하는 곳이 광야 입니다. 그런 광야를 200백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건너가야 하니, 호밥 입장에서는 광야로 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모세의 함께가자는 모세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모세 형님 아닙니다. 자는 가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태어난 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다시 한 번 간절히 호밥을 붙잡습니다. 모세가 이토록 애가 타게 그의 처남 호밥을 붙잡은 이유는 그보다 광야 길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없었기 때문입니다. 31-32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말합니다.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 처남은 이 광야에서 우리가 어디에 진을 쳐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처남은 우리의 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갑시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을 다 처남에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처남 호밥이 모세를 따라갔는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와 관련된 기록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처남 호밥을 붙들려 하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분명 위대한 지도자 입니다. 그러나 모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호밥에게 우리의 눈이 되어 달라고, 우리의 길 안내자가 되어 달라고 간절히 청원하는 모세의 태도에서 모세도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만일 우리가 민수기 9장부터 성경을 주욱 읽어 내려간다면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인도 하실지 이미 모세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구름이 장막에서 떠올라 이동하면 구름 따라 가면 됩니다. 구름이 어느 곳이든지 머물면 그곳에 머물면 됩니다. 매우 간단하지만 가장 정확한 인도하심 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인간적인 마음에 처남 호밥이 함께 해주기를 원했던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그 무언가를 의지할 때 더 마음이 든든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행할 때는 마음 속으로 불안감과 의심을 느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실 모세는 지금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광야 길 전문가 호밥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을 따라갈 것인가? 사람은 결코 신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 조차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재물에 의지하면 지금 당장은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아도 결국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인간 의지하고, 세상을 따라가면 반드시 실패 합니다.
오늘 광야의 첫 걸음을 시작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누가 그들을 인도하고 있습니까? 33절 입니다. “(민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 맨 앞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배치 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앞서 행하시며 광야에서 그들이 삼일 간 쉴 곳을 찾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방법으로 언약궤를 앞세우고 행진했습니다. 또한 호밥과 같은 사람의 인도하심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름을 따라 이동 했습니다. 구름이 그들을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한 낯의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기도 했습니다. 34절 보겠습니다. “(민 10:34)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한 것은 호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재물입니까? 내 경험이나 지식은 아닙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넘어집니다. 그러나 인생의 참 안내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도 참 쉼과 안식을 누리는 쉴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가면 구름이 태양빛을 가리워 주었듯이, 우리 삶에도 놀라운 하나님의 복과 은혜, 평강이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사람 의지하지 마시고, 재물 붙잡지 마시고,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