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9 등잔대 앞으로 비취게 하라 (민수기 8장 1-4절)

성소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 입니다. 머리 속에 성소를 한 번 그려 봅시다. 성소에 들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하나님께 떡을 바치는 진설병상이 놓여 있습니다. 매주 안식일마다 발효되지 않은 열두 덩이의 새 떡을 바치는 Table 입니다. 정면에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을 태워 드리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자, 그런데 성소란 장소는 네 개의 천으로 덮여 있는 공간 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밝은 대낮이라도 빛 한점 들어올 수 없는 컴컴한 공간입니다. 그럼 어떻게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성소에 제사장들이 들어가 하나님께 떡도 바치고, 향도 태워 드렸을까요? 다시 성소를 머리 속으로 그려 봅시다. 성소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뭐가 있어요? 떡을 바치는 진설병상. 정면에는 향을 태우는 분향단, 그리고 고개를 좌로 돌리면 바로 어두운 성소를 환하게 비춰주는 등잔대가 있습니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등잔대는 일곱 가지에 꽃이 피어 있는 살구 나무의 형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일곱 개의 등잔에 환하게 불을 붙임으로 제사장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성소에서도 그의 맡은 바를 충실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성소 안에 있는 이 일곱 등잔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아론과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 했습니다.
자, 4절 말씀을 보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등대의 제도는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등잔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순금을 전부 두드려서 펴야 했습니다. 성막에서 제사장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등잔대가 꼭 필요하듯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등잔대가 꼭 필요합니다. 등대는 두드리고 쳐서 만든 것이라 했습니다. 밝게 빛나기 전 두드림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고난 없이는 등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죠. 요즘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죠? 생각보다 목회가 너무 어려운 거에요. 고난을 못 버티고 두 손 들고 도망가는 거에요. 그러나 성경은 고난은 믿음의 시련이라 말합니다. 이런 영적 고난 없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등대가 될 수 없습니다. 성소를 밝게 비취는 등대가 되기 위해서는 순금을 두드리고 치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믿음도 시련을 지나야 살아있는 믿음이 되고, 고난을 통해 성장해야 큰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강철은 어떻게 만듭니까? 아주 뜨거운 열기 속에 쇠를 담궈 놓았다가 꺼내서 무게가 1톤이 넘는 해머로 공중에서 내리 쳐야 합니다. 그리고 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또 때립니다. 쇠에 금이 가요. 금이 간 부분은 갈아서 없애고, 또 다시 고온의 불에 들어가고 또 때립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쇠를 자르는 강철이 됩니다. 오늘 4절에 성소를 밝히는 등대는 금을 쳐서 만든 것이고,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하나님께서 강철처럼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고난도 주시고, 삶의 시련도 주십니다. 고통을 당할 때는 고통의 의미를 알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아오리라!” 주님은 우리를 고난 속에서 단련하시고 정금으로 된 귀한 등잔대로 만들어 가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삶의 모든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계획과 섭리를 붙드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2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일곱 등잔대를 앞으로 비취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8:2)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등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할지니라 하시매” 아까 성소에 들어갔을 때 오른쪽에는 뭐가 있었죠? 하나님께 바치는 떡을 올려두는 떡상, 진설병상이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갔을 때 왼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등잔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2절 말씀에 따라 일곱 등잔을 앞쪽으로 비취게 하면 무엇을 비취는 것이죠? 떡상을 비취게 됩니다. 고난의 두드림을 통과하여 성소 안을 환히 비추는 등잔대는 그 맞은 편에 위치한 떡상을 특별히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바로 이 떡상은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등잔대가 떡상을 환히 밝히듯, 우리들의 진정한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데, 내 자신이 나타난다면, 내 이름이 높아진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 섬김과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고,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 중 앉은뱅이를 고치자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바울을 ‘신’으로 여기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그를 예배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소를 잡아 바울에게 제물로 바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말합니다. “(행 14:15) “사람들이여, 왜 이런 행동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 앉은뱅이를 만나 그를 고쳐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걷고 뛰는 것을 보고 놀라 베드로와 요한을 둘러 쌓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처럼 당신들은 왜 우리를 주목하십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성소의 등불을 켤 때에 일곱 등잔대를 앞으로 비추어 떡상을 밝히듯이, 우리의 헌신과 섬김을 통해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등잔대가 아무리 순금으로 되어 있다 할지라도 기름 없이는 불을 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겐 없는 건강이 있어 헌신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진 것이 있어 또 헌신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능력이나 내 소유가 아닙니다. 등잔대의 불이 오로지 기름에 의해 유지 되듯이 그것은 주님의 은혜요, 주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모든 은혜와 복을 가지고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십시오. 오직 주님만 사랑하시고, 더욱 주님만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