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8 정성스러운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다 (민수기 7장 11-17절)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각 지파를 대표하는 12명의 족장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하나님께 봉헌을 위한 헌물과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 관계상 12-17절만 읽었습니다만 12절부터 83절까지 12명의 족장들이 12일 동안 제물을 바친 장면이 기록된 것이죠. 자, 그런데 성경을 한 번 자세히 봅시다. 제일 처음 유다 지파로 시작해서 마지막 납달리 자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드린 헌물과 제물의 양이 동일하고, 심지어 드린 방법도 똑같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내용을 구지 길게 기록할 필요 없이 열두 명의 족장들이 12일 동안 바친 내용들을 한꺼번에 기록할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A 지파 족장이 $1000불 감사헌금 했습니다. B 지파 족장이 $1000불 헌금 했습니다. C 지파 족장이 $1000불 헌금했습니다…. 이렇게 12번 반복 할 것이 아니라, 누구, 누구, 누구가 $1000불 감사헌금 했습니다. 이렇게 기록하면 더 짧고 간결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지금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의 사건 입니다. 인쇄술도 없고, 종이도 없어, 파피루스에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며,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합니다. 성경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오늘 기록을 보면서 12명의 족장들이 바친 동일한 양의 헌물과 제물에 대해서 구지 12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왜 성경은 이렇게 똑 같은 기록을 12번이나 기록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중요한 사건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또한 성경은 중요한 사건은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그 말은 오늘 12명의 족장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께 드리는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심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12지파는 인원으로 보나 땅의 크기로 보나 서로 형편이 달랐습니다. 더 잘 사는 지파도 있고, 비교적 부족하고 연약한 지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동일한 종류와 동일한 분량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각 지파에 속한 사람들의 숫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어느 지파가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리냐 서로 경쟁함으로 의가 상하지 않도록 한 마음으로 같은 양의 예물을 정하여 드린 것이죠.
또 한 가지 특징은 12지파의 족장들이 한꺼번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총 12일 동안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점 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세요. “(민 7: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족장들은 하루 한 사람씩 단의 봉헌 예물을 드릴지니라 하셨더라” 여기서 ‘드린다’는 말에는 ‘계속해서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헌신을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지난 주도 예배 드렸는데 왜 또 이번주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오늘도 새벽예배를 드렸는데 왜 내일도 새벽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매 순간 주님께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있음에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평생토록 최선을 다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께 드리기를 갈망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드리고 도로 찾으려 합니까? 요즘은 예배 드리는 것을 ‘투자’라고 인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바치고 몇 배로 받아 갈 것만 생각합니다. “십일조 냈는데 왜 갑절로 안 갚아 주시냐?” 따지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배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진 것입니다. 예배는 온전히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도 주시고, 응답도 주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보상을 노리고 예배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그 행위 자체를 기뻐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시간을 바치는 그 일 자체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번 예를 들어 봅시다. 아들녀석이 웬일로 부모인 나에게 선물을 사주었습니다. “아빠, 이거 아빠 주려고 샀어요. 엄마 이거 엄마 주려고 샀어요.” 감동이 되죠. 그런데 잠시 뒤에, 아들이 하는 말이 “엄마 아빠 근데 저 유산은 언제 주십니까?” 감동이 깨지는 거에요. 선물이 더 이상 선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대가를 바로 주는 것은 뇌물이지 선물이 아닙니다. 자녀가 그런 말 안 해도, 그런 마음 안 먹어도 부모는 이미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더 주고 싶고, 가장 좋은 것 주고 싶고, 다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대가를 바라는 뇌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심 어린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기에 드려도 드려도 아깝지 않고 드려도 드려도 계속 드리고 싶은 것이 예배여야 합니다.
족장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을 보십시오. 13-14절 입니다. “(민 7:13) 그 예물은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민 7:14)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먼저 이들이 바친 그릇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필요한 제사용 그릇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족장들이 알고 헌물 한 거죠. 또한 소제물 곡식 제사를 드렸습니다. 소제를 위해 곡식의 가루를 드리는 것은, 마치 곡식을 고운 가루로 갈아 버리듯이, 자신의 모든 삶을 주님께 헌신한다는 고백이며 그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한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족장들이 드린 제사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15-17저절 보세요. “(민 7:15)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 년 된 어린 수양 하나이며 (민 7:16) 속죄 제물로 수염소 하나이며 (민 7:17) 화목 제물로 소 둘과 수양 다섯과 수염소 다섯과 일 년 된 어린 수양 다섯이라 이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의 예물이었더라” 번제, 속죄제, 화목제도 드렸습니다. 정말 다양한 제사를 드렸어요. 총 소 3 마리 잡고, 양 12마리 잡고, 염소도 6마리 잡았어요. 오늘날은 목축업이 발달해서 비교적 고기 값이 쌉니다. 그래도 소 한 마리 잡는게 싼 것은 아니죠. 하물며 3천년 전 일이고, 농경사회니 소 한 마리가 얼마나 비쌌겠습니까? 우리가 지금부터 100여년 전만 해도 소 한 마리만 잘 굴려도 한 가족이 먹고 살았으니,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당시 소 한 마리는 오늘 날 승용차 만큼 가치 있는 물품 아니었을까요? 족장들이 하나님께 바친 양은 결코 작지 않았어요. 이들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음을 보게 됩니다. 족장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를 위해 노력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 했습니다. 오늘 시내 광야에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겠다고 생각해서 드린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그 많은 제물을 드린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경건한 백성으로 살겠습니다”고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그 많은 예물과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 동일한 양의 헌물과 동일한 종류의 제물을 굳이 12번 반복해서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네, 하나님 보실 때는 그러 했어요. 왜냐하면 주님 보실 때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스러운 헌신이 너무도 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봉사도 잊지 않으세요. 다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과거에 섬긴 일, 또 앞으로 섬기는 일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러한 헌신된 자들의 삶을 바라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시고 싶으십니까?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주님을 향한 철저한 헌신과 봉사를 넘치는 기쁨과 구원의 감격 속에서 주님께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