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4 서원 기간이 끝났을지라도 (민수기 6장 13-21절)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실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평생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한시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나실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사 삼손, 선지자 사무엘 같은 사람들은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기한을 정해놓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구분하여 드리는 한시적인 나실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6장에 나온 나실인의 서원 이야기는 바로 한시적인 나실인들에 대한 규정입니다. 어제 우리가 새벽에 살펴본 1-12절은 나실인의 서약을 한 자들이 지켜야 하는 것 세가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금할 것, 머리를 자르지 말 것,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나실인의 서약으로 정해놓은 기한이 다 찼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나실인이 그가 하나님께 서원한 기간을 온전히 성취한 다음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규정에 대한 기록 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양한 제사와 의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나실인이 드린 제사의 종류와 제물의 분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면, 모세의 형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이임 받았을 때 드렸던 제사와 동일한 범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대목에서 우리는 나실인에게 요구되는 거룩함이 대자사장의 거룩함에 견줄 만한 것임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저와 같은 목회자에게만 하나님이 높은 수준의 거룩함을 요구하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주의 백성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서원 기간을 마친 나실인은 총 네 종류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입니다. 또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는 포도주를 제물에 붓는 ‘전제’의 형식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14-15절에 있는 내용을 주목해 보십시오. 여기 보면 나실인은 번제물로 1년된 흠 없는 수양 한 마리, 속죄제물로 1년된 흠 없는 암양 한 마리,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바쳐야 했습니다. 게다가 소제물로 무교병 한 광주리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실인의 서약이 끝나고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는 결코 값싼 제물들이 아닙니다.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들이 드리는 제물의 양은 대제사장의 위심식 때 사용한 양과 맞먹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나실인에게 높은 거룩성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나실인이 서원을 완수하고 드리는 제사가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헌신의 기간 동안 자르지 않았던 긴 머리털을 제단에서 태운다는 데 있습니다. 나실인들은 그 동안 소중하게 기른 머리를 밀고 헌신의 표시인 머리털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제단에 태웠습니다. 이는 여태까지 그가 보여준 헌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나실인의 헌신의 상징인 머리털을 더럽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원 기간이 끝나면 20절 말씀대로 이전처럼 포도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리도 마음대로 자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나실인의 서원은 많은 헌신과 비용을 요구합니다. 일상 생활의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고, 비용적으로도 많은 양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대제사장의 삶과 필적할 정도의 높은 거룩함을 요구합니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나실인의 서원을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더욱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했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거룩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헌신하는 삶을 기뻐함으로 감당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죠.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 받고, 자신의 삶을 구분하여 하나님께 바친 이 시대의 나실인 입니다. 나실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여 불편을 감소하고 많은 희생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분명 때로는 이런저런 삶의 불편함도 견디어야 하며, 시간적 재정적 헌신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고 않고,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면, 그것은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도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섬김은 몸을 굽혀 하는 것이며, 주인을 섬기는 종은 땀 흘리며 수고하는 것이 정상 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억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실인의 서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민 6: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여기 보면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해진 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것 외에도 원한다면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바쁘고 피곤하고 쌓여 있는 많은 일들에 쫓겨 사는 이민 사회 속에서도 없는 시간 쪼개서 교회 가고, 없는 주머니 형편에 돈 모아 헌금 내고, 피곤한 몸 이끌고 가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 결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릴 수 있는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 외에 자원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주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시킨 적도 없으시지만 자기 생각에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라도 해야겠다’하는 마음이 들어 힘이 미치는 대로 주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보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며 그와 그의 가문을 대대로 축복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주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과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자에게 나실인의 삶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으며,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 기쁨 가득한 축제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원 기간이 끝나면 또 다시 새로운 나실인의 서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주님께 드리기를 힘쓰고 주를 위해 살아가기를 갈망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이처럼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때, 인상 쓰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게 예배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주님께 힘이 미치는 대로 드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