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2 성찬의 떡과 잔은 주님의 몸과 피 입니다 (마가복음 14장 22-26절)

성찬은 세례와 더불어 교회가 행하는 2대 성례 중 하나 입니다. 저희 교회는 부활절 주일과 추수감사절 주일 이렇게 두 번 성찬식을 가집니다. 성찬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에서님께서 제정하신 의식입니다. 성찬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나타내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신비적 연합을 보여줍니다. 성찬에는 ‘떡’과 ‘잔’ 두 요소가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이 지키는 유월절 음식의 요소는 세 가지 입니다. 떡과 포도주 그리고 양 고기 입니다. 그러자 유월절 만찬에는 오직 떡과 포도주가 준비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나머지 떡과 잔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14: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한글 성경에는 ‘떡’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이것은 떡이 아니라 빵 입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 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시며 이것이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부서지고 찢어졌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찢어진 빵 조각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찬식 때 떡을 먹는 것은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찢으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제 우리가 주님과 한 몸이 되어,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주와 함께 연합하여 살아가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잔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 합니다. 23-2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14: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막 14: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과 저주를 우리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해 우리를 결박하고 있던 죽음의 권세와 지옥의 권세를 깨트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며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인해 우리들은 구원을 받게 된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잔을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옛 언약에 따르면 매번 짐승을 잡아 소나 양이나 염소의 찢어진 몸과 흘린 피로 죄를 사하는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에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와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언약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여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연약한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죄인을 용서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에 되새기며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천주교와 개신교가 성찬을 진행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할 때 성찬 준비 위원들이 성도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천주교는 주교나 신부들이 ‘떡’과 ‘잔’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면 빵을 떼어 잔에다가 찍어 성도의 입 안에다가 넣어 줍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천주교는 성찬식을 거행하며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믿음을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한다”는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성찬식 때 사용하는 빵이 예수님의 몸이고, 잔이 예수님의 피라면 얼마나 귀하겠어요? 그런데 성도들에게 이거 나누어 주었다가 잘못해서 빵을 땅에 떨어뜨리거나, 잔을 땅에 쏟게 되면 얼마나 큰 일입니까? 주님의 몸과 피를 땅에 쏟은 거잖아요? 그래서 천주교는 아예 이런 불상사가 없도록 성도들에게 빵과 잔을 나누어 주지 않는 거죠. 앞에서 주교가 빵을 포도주에 찍어서 성도들의 입에 넣어줍니다.
그러나 교회는 ‘화체설’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찬 때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성찬을 통해 우리 죄를 위해 당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합니다. 실제로 누가복음 22장 19절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교회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천주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성찬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믿습니다. 즉 교회가 함께 모여 주님의 몸을 나누고, 주님의 피를 함께 마시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영적으로 함께 임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그 다음 무엇 하셨습니까? “축복하시고…” 23절 보시겠습니까? “또 잔을 가지사…” 그 다음 무엇하셨어요? “감사기도 하시고…” 26절 보세요. 그들이 무엇합니까? 찬미 했습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축복의 제목이고, 감사의 제목이고, 찬미의 제목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죽음을 기억하며,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의 복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자리 입니다.
우리가 어찌 성찬 할 때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하겠습니까? 매일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해야 하겠지요. 오늘 이 하루도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고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