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3 부활을 소망하는 삶 (마가복음 12장 18-27절)

오늘날 개신교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와 같이 교단으로 나뉘어 존재하듯이, 유대인들 역시 다양한 종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3대 종파가 바리새파, 엣세네파, 그리고 사두개파 입니다. 바리새파는 우리가 잘 알듯이 율법 준수에 엄격 했으며, 이 당시 성전과 관련된 모든 기득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엣세네파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광야나 동굴에서 지내며 영성훈련을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기도원 혹은 수도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두개파는 유대교의 제사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받아들인 바리새인들과는 다르게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까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사의 존재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제 새벽에 살펴 본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흠잡기 위해 세금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더니,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들도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께 질문을 던짐으로써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물어본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대결혼법’이란 것에 대해서 정리해야 합니다.
말씀 한 군데를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신명기 25장 5,6절 말씀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신 25:5)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신 25:6)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방금 읽은 신명기 25장 5-6절을 가리켜 ‘계대결혼법’ 혹은 ‘형사취수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편의상 ‘계대결혼법’이라고만 부르겠습니다. 모세오경에서 말하는 ‘계대결혼법’의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한 형제가 있습니다. 형이 결혼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고 그만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게 되는 경우 과부가 된 형수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은 남편의 동생인 아우를 통하여 죽은 형을 대신해서 아들을 낳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이 받아야 하는 유업을 형수의 아들이 이어받도록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계대결혼법’의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로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입니다.(창 38:6-11) 유다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습니다. 장남의 이름은 엘, 차남의 이름은 오난, 막내의 셀라 입니다. 유다의 장남 엘은 다말이란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엘은 여호와 목적에서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이 때 ‘계대결혼법’에 의해서 남편을 잃은 다말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지 아니하고 유다의 둘째 아들인 오난을 통해 씨를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나 오난은 이 씨가 자기의 아들로 여겨지지 아니하고죽은 형의 것으로 여겨질 것을 알고는 계대결혼법의 도리를 행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오난 역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마지막 셋째 아들까지 잃어버릴까 염려한 유다는 다말에게 막내 아들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유다가 ‘계대결혼법’을 지키지 않자, 우리가 잘 아는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계대결혼법’의 두 번째 대표적인 예는 룻기 4장에 나오는 보아스와 룻 이야기 입니다.(룻기 4:1-4) 보아스는 룻의 죽은 남편을 대신해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줍니다. 룻기에 보면 ‘기업 무를 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말이 바로 ‘계대결혼법’을 의미합니다. 죽은 남편을 위해서 동생 혹은 가장 가까운 친척이 과부된 여인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됩니다. 보아스가 룻을 위해 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오늘 사두개인들은 신명기 25장에 나오는 바로 이 ‘계대결혼법’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죠. 이들은 계대결혼법을 통해서 ‘부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7형제가 있습니다. 첫째 형이 장가를 가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그만 상속자가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계대결혼법에 따라 둘째가 과부가 된 형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둘째 역시 상속자를 남기지 못하고 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그리고 막내도 결국 상속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본격적인 질문은 23절 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막 12: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있다면, 부활 후 계대결혼법으로 저 여인과 모두 결혼하게 된 7형제 중 누가 저 여인의 남편이 될 것인지 물어보고 있는 것이죠. 사두개인은 이러한 논리 때문에 더더욱 부활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을 간단하게 해결 해주셨습니다. 24-25절 입니다. “(막 12: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막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사두개인들은 영혼도, 부활도, 천사도 다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뒤집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죽게 되는 이 세상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결혼 하지도 않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하늘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식 할 때 하는 서약도 언제까지 유효 합니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Until death do us part) 죽음 이후에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사는 것처럼 장가가고 시집가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 삶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와는 다르게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존재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또 하나의 날카로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26절 입니다. “(막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믿기에 부활과 내세를 부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이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모세오경을 통해 영혼, 천사, 부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26절에 나오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는 표현을 한글 성경으로 보면 이게 왜 중요한가? 하고 잘 이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어성경을 보면 이 표현은 다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지 수백 년 뒤에 태어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이들을 가리켜 현재형으로 사용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죠.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죠. 만일 영혼이 없고, 부활이 없었더라면 아브라함이 죽는 순간,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활하여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신 글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가 아니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존재도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자로서 성경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