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8 기도의 능력을 상실한 성전 (마가복음 11장 12-19절)

구약성경에는 두 개의 성전이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지어진 성전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입니다. 통상 ‘솔로몬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수십 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걸치고 7년의 공사를 통해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성전이 준공됩니다. 하지만 ‘솔로몬 성전’은 B.C. 586년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침공 때 완전히 훼파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약 70년 뒤인 B.C. 516년도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와서 다시 성전을 짓게 됩니다. 이 성전을 당시 돌아온 유대인들의 다스리던 총독의 이름을 따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규모면에서 훨씬 축소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헤롯 대왕은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 했습니다. 기존의 성전을 더 크게 만드는 공사를 한 것이죠. 그래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성전을 가리켜 ‘헤롯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헤롯은 성전을 과거 스룹바벨 성전 때보다 그 넓이를 2배나 넓혔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을 지나서 성전 구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는 바깥 뜰이 나옵니다. 이 뜰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뜰 안쪽으로는 어느 이방인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자라도 유대인이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의 뜰’이라고 불렀습니다.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이방인도, 유대인 여인들도 들어가지 못했던 ‘뜰’이 하나 더 나옵니다. 이곳을 ‘이스라엘 사람의 뜰’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곳입니다. 더 안쪽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이 있고 더 깊숙한 곳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위치 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이란 가장 바깥쪽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곳에서는 희생 제사에 필요한 소, 양, 염소, 비둘기를 판매 했던 것이죠.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제물들을 판매하고 있었을까요? 로마 제국의 침략을 받은 이스라엘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고 있던 수 많은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이 아닌 해외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비록 고향 땅인 팔레스타인을 떠났지만, 율법에 따라 매년 3차례씩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왔습니다. 또한 꼭 절기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따금씩 성전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먼 곳에서 오다 보니 제사에 사용될 제물을 가지고 오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무언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판매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 입니다. 먼 곳에서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제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이방인의 뜰’에 하나 둘 모여듭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유대인들도 매일 드려야 하는 희생 제사의 제물을 이 상인들에게 구매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상인들이 ‘이방인의 뜰’을 채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전에 물건 값을 깎기 위해 흥정하는 사람들의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가 가득하고, 동물의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도떼기 시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최대 절기인 유월절이 배경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니 성전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소, 양, 염소, 비둘기 파는 상인들과 구매자들이 한데 어울려 매우 혼잡 했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자리 값 받기 마련입니다. 성전에는 아무 상인이나 와서 장사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 상인들은 제사장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였습니다. 상인들과 제사장들이 이 사업에 동업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자료에 의하면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 역시 성전 상인들이 자리새로 낸 돈의 일부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여행객 혹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지극히 필요했던 조치로 시작된 일이었으나,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돈에 눈이 먼 탐욕만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 혼잡한 성전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죠.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밖으로 내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환전하는 자들의 테이블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엎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왜 성전 안에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 환전업자들이 있었을까요? 우리가 달라 가지고 한국 가면 원으로 환전하지 않습니까? 이 당시에 성전에서는 로마의 화폐에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서 일반 화폐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전에서 통용되던 ‘티리쉬’라 불리는 성전화폐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화폐를 환전해주는 환전업자들이 있었던 것이죠. 이들은 상당한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성전에서 환전을 하는 것은 커다란 수익을 챙길 수 있는 독점 사업이었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비둘기 파는 자들까지 제사장들에게 자리세를 주며 여러가지 부정 부패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이 모든 사람들을 다 내어쫓으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기구’란 돈 바꾸는 자들의 table, 비둘기 파는 자들의 Chair, 돈을 담는 그릇과 같은 장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것이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 하셨습니다.
본래 성전을 지은 이유는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7절에 보니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민이란 말 그대로 모든 민족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17절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 56장 7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의 집의 기능과 목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주의 백성이 만나는 장소 입니다. 또한 성전은 기도를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성전은 더 이상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시장바닥, 강도의 굴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행위는 성전의 본래 기능을 상실케 했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닌 부당한 이득을 갈취하는 ‘강도의 소굴’로 전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성전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도하는 곳으로 사용될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날 헤롯 성전이 남아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디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교회가 성전입니까? 아닙니다. 신약성전에서 성전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거합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곧 성전 입니다. 따라서 오늘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곧 성전인 우리 마음 속을 정결케 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으로써 우리가 세상에 물들어 회복해야 할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속한 가정, 직장, 교회 공동체가 정결해지려면 각각 무엇을 결단해야 합니까? 우리 안에 혹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 물질주의, 세속주의로 물든 곳이 있다면 과감하게 모두 정리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을 세속주의로부터 멀리하고, 만민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시는 주님의 성전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