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7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11장 1-11절)

어느 나라나 대통령를 뽑는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를 따라다니는 많은 무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연설하는 장내에는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군중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자들이 경제를 살리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다시 일으킬 것을 기대합니다.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미국도 대통령 선거 때에 공화당이나 민주당 후보자들이 각 주를 돌아다니며 연설을 한 번 할 때마다 그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합니다.
오늘 본문의 풍경이 이와 비슷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들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빵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도 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실 때 거기 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병 고침을 받은 환자의 가족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자, 소경, 귀신들린 자, 문둥병자, 절름발이, 앉은뱅이 등 여러 환자들을 치유하시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밖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귀로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적이 없으십니다. 오직 제자들과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 입성 후 최종적으로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사역에 거의 다다른 이 시점에서 그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은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많은 기적들,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일 가능성을 높게 사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 두려워 공공연하게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선포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을 따라오는 인파의 행령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 숫자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앞지르고 또한 따라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이 예수님을 주목하고 눈 여겨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예수님을 따라고 있었던 것이죠.
지금 예수님을 따라가는 유대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아가 오면 현재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헤롯 가문을 왕위에서 끌어내려 줄 것으로 기대 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사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에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역할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헤롯 가문을 왕위에서 쫓아내고, 정치적/군사적 왕으로 등극하실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또한 그 이후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린 것과 같은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을 통해 로마 제국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망은 군중들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 해 온 12명의 제자들도 이와 비슷한 기대를 품고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제자들은 이번 예루살렘 여정 길에 그렇게 서로 ‘누가 크냐?’하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데, 그 전에 12명 중 누가 개국공신이 되어서 예수님의 최측근 인사가 될지 서로 먼저 정해 놓으려고 했던 것이죠.
그러던 중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도달 했으니,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르는 이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얼마나 흥분 했겠습니까? 이 순간만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되셔서 자기들을 헤롯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시고 이전에 다윗 시대에 누렸던 부국강병의 영광을 누릴 것을 고대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다다르자, 예수님은 두 제자를 시켜 한 마을에 매여 있는 아직 아무도 태워 본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를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동네 사람들이 그들에게 “왜 남의 새끼 나귀를 가지고 가십니까?”하고 물어보면 “주께서 쓰시겠다”하고 말하고 “사용 후 즉시 보내리라”하고 말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끼 나귀를 끌고 왔습니다.
자,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동화나 소설을 보면 왕이나 왕자들은 백마를 타고 옵니다. 꼭 흰색 말은 아니더라도 명마 혹은 준마 급은 타고 입성합니다. 그래야 왕의 위엄이 살죠.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어떤 말을 선택하셨습니까? 백마도, 명마도, 준마도 아닙니다. 나귀였어요. 그것도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새끼 나귀 였습니다.
한번 이런 장면 생각해 보시겠어요?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 들어갈 때, 최고급 세단 차 타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새롭게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가족들하고 백악관 들어가는데 그가 탄 차가 Compact Mini Car 입니다. 한국말로 하면 티고, 프라이드 이런 차에요. 요즘 말로 하면 Honda의 Civic, Toyota의 Corolla, Ford의 Focus 타고 들어간 거에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대학교 처음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부모들이 사주는 차 있지 않습니까? 그런 차 타고 백악관에 들어간다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미국 대통령이 격이 있죠.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전 세계 메스컴이 대서특필 했을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14년도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 했을 때 벤츠를 안 타고 기아 자동차의 Compact mini car, 경차인 Soul 이란 차를 타서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한 적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 좋은 말들 다 제쳐 두고, 새끼 나귀를 고르셨을까요? 예루살렘에 말 Lease 하는 비용이 비싸서요? 예수님께서 좋은 말 사실 돈이 없으셔서요? 아니죠. 예수님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시고 새끼 나귀를 고르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에 익숙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구약성경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스가랴 9장 9절에 분명히 겸손의 왕이 오실 터인데 그가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를 타고 온다고 예언 되어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말이 아닌 새끼 나귀를 고르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신 모습을 보자 사람들은 더 난리가 났습니다. “이 분이 바로 성경에서 예언 된 바로 그 왕이구나?” 하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 장면을 한 번 성경에서 볼까요? 8-10절 말씀 입니다. “(막 11:8)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막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막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란 말은 헬라어 단어로 번역하면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Save now!” 입니다. “예수님, 어서 저 이방인 헤롯 가문을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셔서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던 것입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직 예수님이 왕이 되신 것도 아닌데, 이미 왕이신 것처럼 사람들은 그가 가는 길을 예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의 들 뜬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좌에 오르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온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향해 가지고 있던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서의 기대와 소망이 끊어지자, 성난 민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이죠.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 기대, 흥분의 환호성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명자로서의 예수님의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차분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 정도 되시면 유럽에서 가장 좋은 말을 탈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흔들림 없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어 가셨습니다.
오늘 이러한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참 제자의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휩쓸려서 우리 신앙생활이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인정 받고 칭찬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묵묵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겸손함과 정직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겸손함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변에 얽매이기 쉬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길, 기도의 길, 제자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