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른 바 ‘오병이어’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와 비슷한 ‘칠병이어’의 기적이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지 못합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두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병이어 사건과 동일한 사건이 아닌가?” 하고 주장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칠병이어’ 사건은 ‘오병이어’와는 별개의 또 하나의 기적 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오병이어 사건은 이스라엘 땅에서 하신 사건이라는 것과 오늘 본문에 기록된 칠병이어 사건은 이방 땅에서 하셨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주님은 이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위하여 사방이 확 트인 평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큰 무리와 함께 2박 3일 동안 사경회를 하셨습니다. 처음에 예수님 보려고 온 사람 중에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온 사람, 따로 먹을 것을 준비해 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서 온 사람들은 집을 오가며 밥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먹을 것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온 자들을 굶주린 상태로 돌려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은 참 좋으신 분으세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빼앗으려고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누리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 앞에 나아오는 자들의 삶을 얼마든지 풍성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난 3일 동안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적인 양식만 전해 주는데 관심을 갖지 않으시고, 그들의 수중에 육신의 양식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막 8:3)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지금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상당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은 “아니 주님 우리가 이 사람들 먹는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하고 반문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사람들의 형편을 아주 섬세하게 헤아려 주셨습니다. “멀리서 왔는데 우리가 어찌 굶주린 상태로 돌려 보내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육신을 가진 인간의 고통과 애환에 대해서는 무관심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오히려 제자들 보다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육신의 필요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히 멀리서 온 사람들이 겪게 될 굶주림과 어려움까지 다 헤아리고 계셨던 것이죠.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주님은 우리의 형편에 대해 무관심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인 필요만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지만, 가장 비천한 자들의 아픔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시며 그 고통을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가 처한 모든 형편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또한 친히 도우실 준비도 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힘든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우리의 모든 형편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도움의 손길을 펴시고 풍성한 삶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고자 하시니, 제자들은 무척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막 8: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지금 본문의 상황을 놓고 보면 제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들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광야에 있습니다. 빈들 입니다. 게다가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스무 살 넘은 남자만 해도 대략 4천 명 정도 됩니다. 집에서 손님 치뤄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손님 4명만 와도 음식 준비하는 일이 보통이 아닙니다. 하물며 40명도, 400명도 아니고 4천명을 먹여야 한다니 이거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러나 제자들의 이 답변은 예수님을 전혀 믿지 못하는 불신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미 이들은 얼마 전에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빵과 물고기가 열두 광주리나 남은 것을 경험 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에게 빵을 직접 나눠주고 물고기를 나눠주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모든 기적을 체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은 예수님께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하고 대답한 것이죠. 자, 그렇다면 얼마 전 오병이어를 체험 했던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 받은 은혜를 잊어 먹었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예수님의 기적을 가장 가까이서 생생하게 본 사람들 중에 열 두 제자 만큼 많은 기적을 몸소 눈으로 보고 체험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이러한 불신에 빠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그 많은 이적과 능력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또 다시 주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이 모습이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주님의 은혜를 입었습니까? 지난 날 도저히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다고 여겨왔던 무수한 일들을 우리는 주님께서 은혜로 해결해 주시는 것을 많이 체험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 다시 문제가 찾아오면, 또 다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신의 태도를 보여서는 안됩니다.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태까지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염려를 버리고 기도로 간구함으로 문제를 해결 받는 능력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5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주판을 굴려보고 계산기 눌려 봅니다. “내가 지금 가진 떡이 4천 명 먹일 수 있는 양인가? 물고기는 얼마나 남았나?” 내 머리로 셈 해보고 손익을 따져 보고 일이 되나 안 되나를 헤아려 봅니다. 물론 이러한 사고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이성도 주님께서 주신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내 자신의 이성의 셈과 계산으로 제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계산에 지배 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초월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자 이십니다. 주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시는 분이세요. 우리의 제한 된 생각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래, 난 안 될 수 있어.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하시지! 내가 가진 것을 얼마 없지만, 이것 가지고도 주님이라면 능히 4천 명도 더 먹이실 수 있지!” 이렇게 반전적인 신앙의 사고를 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 있느냐?” 물으시는 예수님께 제자들은 떡 일곱개를 드렸습니다. 생선도 작은 것 두 마리를 드렸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던 문제가 주님의 손에 맡겨드리자 놀랍게 해결 되었습니다. 빵 일곱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4천 명을 먹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릴 때 주님은 크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이성의 틀에 갇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