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1 하나님의 말씀 vs 사람의 전통 (마가복음 7장 1-8절)

유명 시사지인 타임즈는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여 그 사람의 사진을 잡지 커버로 사용합니다. 만일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이스라엘 타임즈가 있었다면 커버 인물로 당연코 예수님의 얼굴이 실렸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민중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선풍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성경을 가르치던 사람들은 주로 바리새파 혹은 사두개인들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둘 중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시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파격적인 행위와 자신에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바리새인들이 볼 때 납득할 수 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에 따라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자들이었고,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교사이며 동시에 수호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볼 때 율법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뒤엎는 예수님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넘어뜨릴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을 파견했습니다.
때마침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식사 하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2절을 보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위생적으로 손이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 의미에서 부정하다는 뜻 입니다. 유대인들은 의식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식사 전 손을 씻는 것을 정결 의식으로 정하여 전통처럼 지켰습니다. 특별히 이 당시 사람들은 포크나 나이프를 가지고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기 때문에 손을 씻는 것은 매우 위생적인 관례로 본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은 것은 위생상으로 불결할 수는 있으나 특별히 부각시킬 만큼 큰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트집잡기 위해 온 이 사람들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한 것을 보고 장로들의 유전을 어겼다고 마구 정죄 했습니다.
3절을 보면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는 성경의 내용이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규정들을 구두로 전승해 온 것 입니다. “밥을 먹기 전에 꼭 손을 씻어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덧붙인 내용들이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유대인들에게는 이러한 구전이 율법과 맞먹는 권위를 가지기 시작했고, 장로들의 끝없는 유전은 결국 성경을 왜곡해 버리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안식일 준수법 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세부규칙들을 정해놓고 안 지키면 성경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이 사람들도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은 것을 보고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처럼 제자들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5절 입니다 “ (막 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지금 이 사람들은 궁금해서 질문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책잡기 위해서 그를 시험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은 흠이 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한 것이죠.
예수님은 이 질문에 답하시며 이샤아서 29장 13절 말씀을 인용 하셨습니다. 6-7절 말씀 입니다. “(막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그들이 ‘위선자’임을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떠났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는 경건을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유전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의롭다 평가받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고, 많은 이들에게 자기 의를 자랑하고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도 아니면서, 하나님을 위한 듯 살아가는 너무나도 가식적인 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 즉 ‘위선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위선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6절에 나온대로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 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겉으로 보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 보다 사람들의 평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사 받고 존경 받는 데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서 경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고 있는 위선자 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마음 없이, 중심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을 향해 7절에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자타공인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 꼭 내고, 기도 시간, 말씀 시간 하루도 빼 먹지 않고 지켰습니다. 성경 연구가 직업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이 하는 것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무익하고 무의미한 행위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는 인간적인 종교활동은 그 끝이 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까? 만일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나’ 중심이라면 결국 바리새인처럼 열매 맺지 못하는 무의미한 종교활동이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내 모습을 자꾸만 비교하며, 나의 종교적 열심과 섬김을 자랑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이라면 우리도 말씀을 왜곡시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를 포기하고, ‘나’를 비우고,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하고자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자신의 연약함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강함을 기뻐할 것입니다.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다면, 그의 믿음은 하나님 보실 때 진실하며 아름답고, 또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신앙생활만이 하나님 보실 때 아름다운 참된 신자의 모습 입니다. 오늘 이 하루 내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