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신 기간 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점은 예수님께서 이미 공생애를 시작 하신지 2년이 지나고, 이제 십자가를 1년 정도 앞둔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이스라엘내의 갈릴리 경계를 뛰어넘어 갈릴리 동쪽과 북쪽 이방 지역으로까지 사역을 넓게 확장하셨습니다.
7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먼저 이들은 예수님께 부름 받았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참 제자 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교회’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로 본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삶은 부르심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며 복음 전파의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7절에 보면 ‘보내시며’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가 헬라어로 ‘아포스텔르스’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는 열두 제자라고 부르다가 이후에는 열두 사도라고 부르죠? ‘사도’란 단어가 바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 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이들이 둘씩 둘씩 짝지어 파송 받은 점 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의 문화에서 ‘둘’이란 증인의 수 입니다. 즉 재판을 할 때도 한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두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보냄 받은 두 증인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한 거부가 되는 셈이죠. 이처럼 예수님께서 두 명씩 짝을 지어 제자를 파송하신 전통은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에서 전도 여행 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부르심 받은 하나님의 백성,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7절을 보니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모든 사단의 권세를 능히 이길 수 있는 권세 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우리에게도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 믿으면 그 안에 있던 악한 권세가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7절에 사용된 ‘주시고’란 단어가 심상치 않습니다. 한글 성경을 보면 이 단어가 물건을 건내 주듯이 한 번 주고 끝난 것처럼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을 보면 이것은 계속해서 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지속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 이러한 권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요청해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것 준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불허하다 보니 가능한 만반의 준비를 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8-9절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막 6: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막 6: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먹을 것도 싸가지 말고, 옷도 신발도 여벌 가지가지 말고, 심지어 여행 가방, 지갑 다 놓고 지팡이 하나 가지고 가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누군가 선교사로 파송 받는데, 그 가정이 선교지에 지팡이 하나 들고 간다고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황당 하겠어요? “저 선교사님 믿음이 크구나?”하는 생각보다는 “저 선교사님 큰일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더 먼저 들지 않겠습니까? 왜 예수님은 지금 전도 여행시 지팡이 외에 다른 물품들은 다 금지하고 계신 것일까요? 먼저 지팡이는 왜 필요한 것일까요? 오늘날 지팡이는 다리가 불편하거나, 다리를 다쳤거나 무릎에 힘이 약한 사람들의 걸음을 돕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 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만 해도 길이 매우 험했습니다.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거리는 돌과 바윗길도 많았고, 때로는 험산준령도 넘어가야 했습니다. 지팡이는 길가에서 만날 수 있는 늑대와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신변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고 장거리 여행에 피로를 덜어주는 도구 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 시 다른 물품을 가지고 가는 것을 금지 하셨을까요? 9절을 보면 심지어 여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지갑도 안되고요, 간식도, 도시락도 못 가져 갑니다. 지금 전도 여행 가는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건은 매우 특별하 장면이란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이것은 전도 훈련 중 일어난 일 입니다. 즉 후에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사역 할 때 필요한 물품들 놓고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들이 필요한 것을 후훤해주기도 했고 심지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겨울 옷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즉 이처럼 지팡이만 가지고 가는 전도 여행은 매우 특별한 케이스인거죠.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은 구체적인 교육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지팡이만 가지고 떠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을까요? 전도라는 것이 사람의 준비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 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준비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도 최대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훈련 기간 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번 전도 여행을 통해 최대한 하나님만 의존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쓸 필요를 스스로 챙겨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모든 필요를 알고 미리 예비해 놓으실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앙을 가지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막 6:10)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여기 ‘어디서든지’라는 말은 ‘어디일지라도 관계없이’라는 말입니다. 즉 제자들이 가는 곳이 매우 광범위하여 어느 장소가 될지 모른다는 거죠. 그러나 그 장소가 어디일지라도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가야 합니다. 또한 그 곳에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도울 자들도 있고 또한 그들을 배척하는 자들도 있을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일 그들을 영접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묵으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만일 배척하는 자들이 있으면 발 아래 먼지를 떨어뜨려 버립니다. 발 아래의 먼지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하여 극도의 경멸을 나타낼 때 하던 상징적인 표현 입니다. “당신과 더 이상 교제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당시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모습을 통해 제자들이 전한 천국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은 신발에서 떨어지는 먼지처럼 최후 심판 때에 버림을 당할 것을 미리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 드디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벌 옷도 없습니다. 도시락도 간식도 없습니다. 먹을 것 사먹을 돈도 없습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입니다. 제자들이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2-13절 입니다. “(막 6: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막 6: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자들이 회개의 복음을 전하자, 많은 귀신들이 쫓겨났습니다. 또한 병자들의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만 나타나던 하나님의 능력이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죠.
백문이불여일견 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2년 동안 스승이신 예수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전도 여행을 가서 복음을 전하며 몸으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제자들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깊고 진한 깨달음을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 앞에 많은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부족하다. 저것이 부족하다. 이러이러해서 안된다. 저러 해서 안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입니다. 복음 전파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물질이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의지하고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참 제자와 전도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