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5 감추인 모든 것이 드러나리라 (마가복음 4장 21-23절)

어둡고 컴컴한 방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전구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전구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대에는 초에 불을 켜서 방을 밝혔습니다. 혹시 방을 밝히기 위해서 초를 밝힌 후 그 초를 그릇으로 덮어놓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초를 그릇으로 덮으면 빛이 그릇에 가려 다시금 방이 어두워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집 안에 테이블이 있다면 초는 테이블 위에 놓을까요? 아니면 아래 놓을까요? 당연히 테이블 위에 놓을 것입니다. 테이블 아래 초를 넣는다면 어떻게 밤에 저녁 식사를 하고, 혹은 가족끼리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예수님께서 21절에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 당연한 초의 위치에 대한 고찰이었습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여기서 ‘말’이라는 것은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아니고, 타고 다니는 동물 말도 아닙니다. ‘말’은 곡식이나 액체나 가루의 부피를 셀 때 사용되던 그릇을 의미합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한 말, 두 말 하고 곡식의 양을 셀 때 사용하던 그릇 입니다. 등불을 밝혀다가 그 그릇 아래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21절에 나오는 ‘평상’은 쉽게 말하면 식탁 혹은 침대 입니다. 조명은 대부분 천장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일 조명이 침대 아래 혹은 식탁 아래에 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방이 얼마나 어둡고 눈이 침침 하겠습니까? 등불은 어디 있어야 합니까? ‘등경’ 즉 등잔대에 두어야 합니다.
등불은 사방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존재 합니다. 따라서 등불을 켜서 그릇 속에 두거나 침대 밑에 두어 빛이 못 비추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의 뒤에서 조용하게 숨어서 사역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빛이 비출 수 있도록 전면에 나오셨습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막 4: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그 어떤 감추어진 것도 다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죄를 비춰 주십니다. 이전에는 착한 사람인 줄 생각하고 살았는데,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나 같은 죄인도 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진리의 빛을 비춰주시니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인 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사람들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빛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침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시자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얼마나 거짓되고 미움이 가득한 사람들인 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마음 속 죄를 감추어 보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가면, 엑스레이를 통과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가방 밑에 꽁꽁 숨겨놓아도 엑스레이 빛이 비추면 훤히 보입니다. 하물며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 속 은밀한 생각도, 인간의 가장 깊은 동기도 하나님은 다 비춰보고 계십니다.
오늘 또 다시 주님은 23절에 “(막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누가 ‘들을 귀 있는 자’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귀가 있다고 다 듣는 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있는 사람 입니다. 즉 우리가 어제 새벽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자만이 깨닫는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것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나대로 살 테니.”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복음을 설명하고 들려줘도 귓등으로 스쳐지 나갈 뿐 듣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듣는다’는 말은 육신의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귀를 열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또한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복임이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환한 빛으로 들어난 진리 입니다만, 그들은 아직도 어둠 가운데 머물고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서 행하는 은밀한 죄, 숨겨진 죄를 환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은밀한 죄들이 밝혀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골프의 황제라 불리던 타이거 우즈. 그는 스포츠 선수 중 가장 좋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인생의 롤모델로 선택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난 수년 동안, 많은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 온 것이 밝혀지며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저 보완이 삼엄한 백악관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을까요? 아니요. 빌 클린턴의 루윈스키 사건 기억 나십니까? 감추어진 것은 결국 다 드러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가 남들 눈을 피해 젊은 청년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이 전 세계 사람들에 두고두고 회자 될 지 상상이나 했을까요? 어둠에 거하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감추고 있는 죄의 비밀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내 남편이 절대로 모르겠지… 이거 내 아내 평생 모를거야…” 아니요. 감추인 것이 밝혀지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보여주실 때 빨리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지금이라도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반드시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죄를 숨기고 살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 환한 빛으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춰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사십시오.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십시오. 은밀한 죄들을 멀리 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죄와 함께 어둠에서 움츠려 사는 삶이 아니라,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