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9 안식일에 선을 행하라 (마가복음 2장 23절 ~ 3장 6절)


어느 안식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밀 밭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벌어진 사건 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함께 하루 종일 바쁘게 사역하느라 밥 먹을 타이밍을 놓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밀밭을 지나가며 길도 내야할 겸 이삭을 건들다가 손으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죠.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제자들의 행위는 곡식을 타작한 것과 같습니다. 즉 안식일에 일한 것이며, 안식일을 범한 것이죠.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준수 했기에,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는 모습을 보고 저들을 정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 책임을 물었습니다.
24절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 할 일을 하나이까?” 이 당시 이미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긴 목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든지 이 항목을 준수하며 살아갔고,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할례 의식처럼 이스라엘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 였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사건은 바리새인들이 볼 때 민족의 배신자요, 율법의 변질자 즈음으로 보이는 것이죠
예수님은 자신을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구약성경에 나온 다윗의 경우를 들어 반증하셨습니다. 25-26절 말씀 입니다. “(막 2: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막 2: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본래 성전에 제물로 바쳐지는 빵, 즉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칠 때 매우 허기진 상태로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은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구했고, 그는 다윗에게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거룩한 빵을 주었습니다. 제사장은 다윗 뿐만 아니라 허기진 그의 병사들에게도 거룩한 빵을 나누어 주어 먹게 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다윗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먹게 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핵심 단어는 25절에 ‘핍절’ 입니다. 이는 어떤 것이 긴급히 필요한 상황을 나타내는 단어 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그가 먹을 것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은 몹시도 지치고 굼주려 있는 다윗을 위해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내어준 것이죠.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보여준 사랑처럼 사람을 위해 율법이 존재하는 것이지 율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죠. 특별히 예수님께서 다윗을 예로 든 이유는 유대인들이 다윗을 유대의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감히 바리새인이라도 다윗을 정죄하는 반론을 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실 메시야의 예표 였던 다윗 왕이 율법이 금한 진설병을 먹을 수 있었다면,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인간의 규례가 금한 일을 행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본래 율법에도 없는 안식일에 관한 39개 세부 조항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정죄하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의 참 의미는 사라지고 오히려 사람들을 구속하고 쉼과 자유를 빼앗는 계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 하셨습니다. 27절 입니다. (막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예수님은 안식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는 열심이었습니다만, 정작 왜 안식일이 있는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와 억압, 죄의식의 굴레만 덧씌우게 된 것이죠.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분명한 의미와 안식을 사람들에게 되찾아 주셨습니다.
28절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깜짝 놀랄만한 선포를 하셨습니다.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지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이상한 사람이며,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이단자라고 정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소개하시며,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예수님은 안식일 계명을 마음대로 어길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안식일 계명을 무시하거나,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리새인들이 정한 인간의 규례와 유대인들의 전통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어느 것 하나 자기 임의로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언제든지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서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며, 구약의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안식일 계명을, 신약에 오신 예수님이 폐지 시켰다거나 미준수했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이 날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셨고, 또한 안식일이 본래 인간에게 주려고 한 참된 안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 없이는 진정한 쉼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율법을 풀이하느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수 많은 규례와 전통에 매여 자유와 쉼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들도 저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은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참 쉼을 주는 것은 오직 진정한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의식과 규례를 통해서는 참된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안식일 계명을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해답이 바로 3장 1-6절에 나오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또 다시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안식일 규례를 예수님께서 범하자 바리새인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3장 4절 입니다. “(막 3: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선을 행하시고 생명을 살리신 것처럼 우리들도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의식과 규례를 준수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참된 목적, 생명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