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2 제자로 부르시자 즉각 따르다 (마가복음 1장 12-20절)


오늘날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삶의 초점이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삶에 왜 성공적이었습니까? 삶의 초점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삶의 초점을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주님이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주님이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천국을 말하는데 천국은 어떤 나라를 말할까요? 천국을 장소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천국은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내가 사는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이 계신 곳이 바로 천국 입니다. 찬송가 495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지배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없는 중에서도, 슬픔 중에서도 반드시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복음 전파가 삶의 초점이고 최대 목표였는데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제일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제자 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을 제자로 삼으실까요? 오늘 본문은 몇 가지 우리에게 제자의 특성을 가르쳐 줍니다.

1. 첫째, 주님은 성실한 사람을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첫 제자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를 때 그들은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16절). 그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었고, 자기 일에 성공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주님께서 성실한 사람을 부를까요? 제자에게는 머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위대한 일을 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을 성실하게 하는 성실한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무엇보다 성실함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실패한 사람만이 신학교에 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학교 가면 사업 망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이 간다는 인식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실패한 사람만 신학교에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끔 보면 실패하는 사람이 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주의 종이 되게 하려고 실패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실패한 사람들을 불렀습니까?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성실한 사람들이었고 성공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배가 있고 ‘삯꾼’들을 둘 정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주님이 실패한 사람들, 노는 사람들만 모아 놓고 제자를 삼은 줄 압니다. 그래서 실패하면 주의 종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성공하는 사람들도 나서야지 실패한 사람들만 나서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바람직하지 못한 성공주의, 물량주의가 성행하게 된 이유에 실패한 사람들이 교회 일을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으로 삼는 태도와 일터를 잃은 사람들이 교회 일을 일터로 삼는 태도도 큰 이유입니다.
실패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성실하고 성공적인 사람들이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실패하고 벼랑 끝에 몰려야 신학교에 가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칫 자기 인생의 실패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사명으로 포장하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업이 번창하고, 인생이 상승할 때 그것을 깨끗이 포기하고 신학교에 가는 것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진정 사명자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모든 것이 잘 풀릴 때에는 그 삶의 터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더 붙잡습니다. 그런 때에 사명을 받았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실패해야 사명을 받았다고 하니, 주의 종이 실패자만의 일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12제자 중에서도 핵심 제자 4명을 부르실 때 그들이 성실하게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일을 할 때 부르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 후보생은 실패자가 아니라 성실한 성공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둘째, 주님은 버릴 줄 아는 순종이 있는 사람을 제자로 삼으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에는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도 즉시 순종했습니다. 직업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는 문제이지만 그들은 즉각 순종했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에 감동주실 때 곧 바로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지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순종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나중이 왕창 순종하고, 나중에 크게 순종하려고 하지 마시고, 매주, 매일, 매시간 순종하려고 하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열심히 모았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 어차피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니까 그때 왕창 주님께 다 바치려고 하지 말고 하루하루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순종할 때 모두 무엇인가를 버려 두고 순종했습니다. 무엇을 버렸습니까? 그물을 버리고, 아비를 버리고, 배를 버렸습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더욱 풍성한 축복을 받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 정말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빼앗아가려고 그런 명령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을 보시고 더 축복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비전, 우리의 인간관계, 우리의 소유보다 주님의 명령을 앞세워야 합니다.

3. 셋째, 주님은 주님을 따라 살려는 사람을 제자로 삼으십니다.
18절에 나오는 ‘좇으니라’는 말과 20절에 나오는 ‘따라가니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주님을 닮아 가는 것과 주님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은혜는 받고, 주님의 축복은 받고, 주님의 구원을 받으려고는 하지만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주님처럼 살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 번거럽고, 때로 힘들어도 주님처럼 살려고 해야 참 제자가 됩니다.
17절의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무슨 뉘앙스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고 바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훈련과 연단 과정을 거쳐서 숙성하고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바로 이루어지지만 제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거듭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할 때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왜 우리가 구원 받은 후에도 계속 말씀을 듣습니까? 제자로 만들어지는 소중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에게 교회가 소중합니까? 제자로 만들어지는 최대 훈련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훈련을 통해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제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축구 선수들은 거의 축구만 생각합니다. 야구 선수들도 거의 야구만 생각합니다. 그처럼 전 삶을 거기에 투자하는 것이 헌신이요, 그런 헌신이 있어야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부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나의 삶의 터전과 소산을 가지고 나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살고 주님을 생각하며 쓰면 그것이 전적인 헌신입니다.
교사가 주님의 영광을 돌리는 학생을 배출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면 제자입니다. 의사가 건강한 몸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도록 치료하면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공무원, 기업가, 직장인 모두 자기가 사는 삶의 현장 속에서 자기 지식, 경험, 기술, 소유를 최대로 동원해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절제하고 절약하지만 주님을 위해서는 통이 큰 것이 제자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라고 구원하신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나서는 안됩니다.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신적인 삶, 이타적인 삶, 사람 낚는 어부의 삶으로 부르신 우리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삶이 너무 중요해서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내 것을 버릴 줄 아는 순종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평생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명자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제자의 삶을 사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