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내리 사랑을 실천하라 (빌레몬서 1장 17-25절)

빌레몬은 골로새라는 도시에서 가정 교회를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달아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 후, 빌레몬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 편지에는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에 대한 언급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기록하며 이제 다시 그를 빌레몬이 있는 골로새로 보내게 됨을 말해주었습니다.
본래 이 당시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노예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오네시모처럼 주인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노예가 붙잡히게 되면 끔찍한 형벌을 죽을 때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다시 제 발로 찾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해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부탁하는 편지를 쓴 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몬 1: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주인의 재산을 훔쳐 도망친 노예 입니다만, 사도 바울은 저가 골로새에 도착하면 이전에 노예 대하듯이 하지 말고, 중요한 손님이 집에 찾아온 것처럼 저를 대해주고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향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은 이성으로도 잘 컨트롤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저 사람을 용서하고 더 이상 미워하지 않도록 내 의지로 수도 없이 결심해도, 여전히 저 사람을 보면 미움이란 감정적인 부분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얼마나 큰 손실을 끼쳤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동무’처럼 대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동무라는 표현은 동역자를 말합니다. 즉 바울 자신을 동역자로 생각하고 있다면 오네시모도 그의 동역자로 대해달라는 것이죠. 어쩌면 빌레몬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으로 품기 어려운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그를 결국에는 품어주고 용서해 줄 것을 믿었습니다. 여태까지 빌레몬이 골로새 교회를 섬기기 위해 보여준 믿음과 사랑을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오네시모도 용서해줄 것이라 믿은 것이죠.
사도 바울은 18-19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몬 1:18)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몬 1: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네시모가 빌레몬 당신에게 빚진 것은 내가 갚아 주겠소. 내 앞으로 청구하십시오. 내가 그 값을 치르겠소.”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 19절에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하고 말합니다. 이는 이 편지가 법적인 효력을 갖는 계약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됨을 말합니다. 오네시모가 저지른 피해를 바울 자신이 빌레몬에게 갚겠다는 것이죠. 바울은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만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중재하기 위해 자신이 대신 변상과 보상의 책임을 떠맡겠다고 자처했습니다. 바울은 죄가 단지 용서로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그가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바울이 지금 가진 돈이 많아서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감옥에서 그는 자신이 먹고 자는 생활비도 스스로 충당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한 몸 챙기기에도 빠듯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를 대신해서 그가 변상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바울이 얼마나 오네시모를 사랑했는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눈이 좋지 않아 늘 대필로 편지를 쓰던 바울이 친히 붓을 들고 친필로 빌레몬에게 보내는 글을 기록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반드시 빚을 갚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19절에 바울은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복음의 빚에 대해서는 계수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사역 하던 당시 그는 두란노 서원을 세워 2년간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많은 사람들 중에 빌레몬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빌레몬은 복음을 전해준 바울에게 복음의 빚을 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보다 귀한 영혼의 생명을 나누어 준 사랑의 빚을 진 셈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오네시모의 과오에 대하여 용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죠.
20절 말씀입니다. “(몬 1: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만약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기만 한다면 그것이 그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오네시모에 대한 빌레몬의 용서와 그를 동역자로 받아들여주는 환대는 바울에게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주는 일이 될 것임을 밝히며 빌레몬이 이 일에 적극적으로 행해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에 대하여 반드시 성숙한 사랑을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하며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수한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죄인인 자신에게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처럼, 자신도 빌레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빌레몬이 오네시모에게도 이와 같은 사랑을 실천해 주기를 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용서 받았고 사랑 받은 사람들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도 다른 이들을 더욱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빚진 자가 살아가야 할 삶은 사랑의 삶이며 용서의 삶 입니다. 오늘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슴 속 미움의 응어리를 그대로 품어 두지 마시고, 주님 앞에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는 길을 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