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3 진실한 사랑을 나누는 자 (에베소서 6장 21-24절)


에베소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에베소 교회에 방문하여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싶지만, 죄수의 신분이라 이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 했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두기고’라는 인물을 파송 합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제 3차 여행에 동행한 아시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골로새 교회와 에베소 교회에 각각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훗날 바울이 그레데에서 목회하고 있던 그의 동역자 디도를 보고자 하였을 때 바울의 사신으로 갔던 인물도 바로 이 두기고 입니다. 두기고는 사도 바울에 의해 전적인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21절에 나와 있는데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라고 표현 했습니다. 두기고는 바울 뿐만 아니라 여러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행실이 늘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두기고와 같이 성품도 성숙하고, 행실도 진실한 동역자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 하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하나님 보실 때 두기고와 같은 자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 하실까요?
바울은 자신의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아무나 보낸 것이 아닙니다. 편지도 중요하지만, 편지를 전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대체로 바울이 자신의 사신으로 택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목회자로 사역할 수 있는 디모데와 같은 자나 혹은 한 지역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리더들이었습니다. 두기고 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두기고와 같이 귀하게 사용하는 주님의 일꾼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 두기고를 에베소 교회에 보낸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안부를 알리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겠어요? “(엡 6: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저는 오늘 이 구절을 읽으며 “바울은 천상 목회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옥에 갇혀 있어도 자신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성도들을 어떻게 격려하고 위로할 것인가”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목회자 가운데는 성도들에게 받기만 하고 위로할 줄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잡아 먹는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자를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기 위함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지요. 성도들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상처를 입어 실족하지 않도록 위로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 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그 일을 감옥에서도 쉬지 않고 하고 있는 셈입니다.
감옥에 갇힌 자신이 직접 교회에 가서 할 수 없으니, 대신 붓을 들고 편지를 써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가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사용한 방법인 것이죠. 사실 고린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골로새서 같은 편지는 그가 친필로 썼습니다만 훗날 로마서는 바울이 불러준 내용을 더디오란 사람이 대필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이 필체가 나빠서요? 바울이 게을러져서요? 아닙니다. 많은 주석 학자들이 바울이 평소 ‘안질’ 즉 눈의 질병으로 고생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보면 그가 큰 글자로 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이 직접 편지를 쓸 수 없을 때에도 사람을 시켜서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편지 사역을 통해 성도들을 계속해서 위로하고 격려하길 원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마음에는 교회를 향한 마음, 성도들을 향한 마음이 가득 했습니다. 천상 목회자인거죠. 암탉이 병아리를 그 날개 아래 품는 것처럼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도로 성도들을 품었습니다. 23-24절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주는 마지막 축복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볼까요? “(엡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엡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23절을 다시 보세요.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떤 축복을 빌어주었습니까? 첫째는 평안 입니다. 이 복은 사도 바울이 교회를 기도할 때 빠지지 않고 빌어주는 축복입니다. 제가 타 교회 목사님들 만나면 가장 흔히 듣는 인사말 중 하나가 “목사님 교회는 평안하시죠?”란 인사말입니다. 왜 다른 것 보다도 평안을 물어볼까요? 평안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물질이 많아도, 권력을 가져도, 건강해도 그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은 물질, 권력, 건강 있으면 평안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물질도, 권력도 건강이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 속 평안은 어디서 옵니까? 23절에 그 답이 있죠?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평안일까요? 폭풍우 속에서도 잠잠할 수 있는 은혜, 풍랑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을 수 있는 평안 입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함께하면, 사자굴을 들어가야 함에도 평안할 수 있고, 실컷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찬송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하는 평안 입니다. 이 평안이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믿을 겸한 사랑이 에베소 교회와 함께 하기를 빌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을 겸한 사랑이란, 나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향해 갖는 마음을 사랑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볼 때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천사의 방언도, 모든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복된 성도는 그 마음에 원수라도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가슴 절절한 사랑을 가진 사람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 받았기에 날 택하여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주변의 이웃들을 사랑하는 자가 가장 복 받은 사람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은혜 입니다. 일마다 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입니다. 죄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은혜 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삶에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간구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투옥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교회를 향하여 있었고, 성도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편지를 쓰고 두기고와 같이 성숙한 동역자들을 교회에 파송하여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목자 바울의 마음이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평강과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또 다른 바울과 두기고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해주고, 그들에게 평안과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한 사랑을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