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나가는 장수는 빈손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킬 방어구를 착용하고 손에는 적군을 무찌를 칼, 창, 활과 같은 무기를 쥐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의 전쟁터에만 해당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군인들을 보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머리에는 방탄모를 씁니다. 방탄복을 입은 특수 부대도 있습니다. 손에는 칼 대신 총을 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이처럼 방어구와 무기를 반드시 소지 합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눈에 보이는 총을 들고 사단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방탄모를 쓰고 다닌다고 사단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방어구와 무기를 가지고 영적 전쟁에 참여하면 될까요? 어떻게 이 영적 전쟁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10-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군대 훈련소에 가면 무기를 주기 전에 먼저 훈련부터 합니다. 군인은 뭐니뭐니 해도 정신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대 유격훈련장에 가면 이런 글귀가 써 있습니다. “훈련 중에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전투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과 같다.” 군인에게 무기를 주기 전에 훈련을 통해서 육체강화 정신강화부터 합니다. 오늘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Be strong in the Lord in his mighty power) 성도의 힘은 그의 근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무거운 거 잘 들고, 체력이 좋다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모든 힘의 근원 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강하여지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 키는 ‘주 안에서’라는 표현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할수록 강해집니까? 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연합을 이룰수록 강해 집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자가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 입니다. 10절을 보면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 헬라어를 보면 단순히 강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강해지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10절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떠나지 않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한 채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자라갈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빌립보서 4장 13절 기억나십니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어디서 할 수 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우리는 주 안에서 살아갈 때 강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죠. 힘의 근원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음을 깨닫고 포도나무에 접붙임 바 된 가지처럼 주님께 계속해서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영혼이 주 안에 거하여 강해진 후에 드디어 영적 전쟁을 위한 전신갑주를 입게 됩니다. ‘전신’이란 말은 ‘온몸’을 뜻하고, ‘갑주’란 말은 ‘갑옷’과 ‘투구’를 합쳐서 갑주라고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궤계, 마귀의 교묘한 전략과 술책을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흉악한 이리처럼 성도들을 해치고, 사나운 사자처럼 먹이를 찾는 사단을 맨몸으로 상대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귀의 궤계를 능히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주신 장비들로 완전무장 하라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총을 들고 싸우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혈과 육 즉 육신을 가진 대상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즉 마귀의 세력을 대적한 싸움 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취해야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총 여섯 가지 장비를 소개했습니다.
첫째로 진리의 허리띠(14a) 입니다. 오늘날은 옷이 발달해도 허리띠가 없어도 바지를 단추에 있는 자크를 잠그고 단추를 매면 바지가 흘러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옷은 허리띠가 없으면 옷이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쉽게 흘러 내렸습니다. 적과 싸워야 하는데 옷이 벗겨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싸움이 되겠습니까? 군인에게 허리띠를 차는 것은 필수 입니다. 자, 그런데 그냥 허리띠가 아니라 ‘진리의 허리띠’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우리 영혼 전체를 꽉 붙잡아주고 있는 것이죠. 거짓 사상과 교리들을 무찌르고 악마의 유혹과 은밀한 꾐을 분별하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흐트러짐 없이 서 있게 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 입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성도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우리를 꽉 잡고 있으면 마귀의 술책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의의 흉배 (14b) 입니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 가운데 심장만큼 중요한 기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팔과 다리가 잘려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심장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 병사들은 원수의 심장을 향하여 화살을 쏘고 창을 던졌습니다. 전쟁에서 가슴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 했습니다. 병사의 가슴을 보호해주는 방어구가 바로 흉배 입니다. 바울은 의의 흉배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우리가 무언가 도덕적이고 착한 일을 해서 얻는 의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흉배는 녹슬고 강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 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죄에 빠지도록 유혹 합니다. 또한 죄에 빠진 사람을 정죄합니다. “너가 무슨 그리스도인이냐! 너 같이 사는 사람이 무슨 집사냐? 너 같이 말씀 읽는 것도 게으르고 기도 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성도냐?” 사단이 우리를 자꾸만 정죄하고 넘어트리려고 합니다. 그 때 의의 흉배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33-34절 말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 34a)” 물론 이 의의 흉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입니다만 우리 역시 도덕적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생활을 할 때 마귀의 참소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은 분명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때 의의 흉배는 그 어떠한 사단의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강한 갑옷이 됩니다.
셋째, 복음의 신 (15) 입니다. 이 당시 로마 군인들이 신던 신은 가죽으로 되어 있고, 무좀을 방지하기 위해 발가락 부분은 드러내고 발목과 정강이 부분에는 장식용 끈이 달려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센들하고 비슷합니다. 이는 병사들이 긴 행군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장비였으며, 여정 중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습니다. 또 이 신을 신어야 험한 곳도 갈 수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는 오늘날처럼 길이 반들반들하게 깔려 있는 곳이 아니라 대부분 돌과 자갈로 울퉁불퉁 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신을 꼭 신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어디에 가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생명의 부활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입니다. 복음 앞에 사단의 권세가 무너집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그 곳에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사라지고, 원수가 서로 화해하게 됩니다. 화목이 찾아옵니다. 복음은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사단이 쉽게 우리를 지치지 못하게 합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 입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6절에서 ‘모든 것 위에’라는 말은 모든 무기 중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장 급할 때 찾는 두 가지 무기가 칼과 방패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기록된 방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둥근 방패가 아니라, 전신을 가릴 수 있는 장방형 방패 입니다. 이 당시 적군들은 화살 끝에 송진을 발라서 불을 붙인 후 사격 했습니다. 그래서 불화살 맞으면 온 몸이 타 죽었습니다. 그래서 불화살을 막기 위한 방패의 역할을 참 중요 했습니다. 바울은 방패를 믿음의 방패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자꾸만 성도에게 불신의 불화살을 쏩니다. “야, 김 집사. 너 지난 번에 기도한 거 그거 어떻게 되었어? 아무 응답 없지? 거봐 기도해도 아무 소용 없다니까? 박 집사 자네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지난 주에 교통사고 당했다며?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자네가 교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혹시 하나님 안 계신 것 아냐?” “최 집사, 자네는 왜 병이 안 나고 계속 그리 몸이 약해지나? 하나님은 자네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거야… 이 집사 자네는 왜 그리 가정 형편이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나? 하나님은 자네를 버리셨다네…” 이처럼 사단이 한 번 맞으면 치명적인 불화살을 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사단이 쏘는 불화살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냐, 하나님은 날 사랑하셔! 하나님은 절대 나에게 악을 행하실 분이 아니야!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셔! 지금 당장 내 앞에 문제가 있어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셔!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날 붙들고 계시지!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리라!” 믿음으로 원수가 쏘는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는 지금도 무차별로 많은 화전을 쏘고 있습니다. 온갖 의심의 화살을 쏩니다. 이거 맞지 않도록 믿음의 방패를 늘 놓지 말고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 (17a) 입니다. 심장처럼 중요한 것이 바로 머리 입니다. 머리를 보호 안하면 적이 도끼나 망치로 내리치는 공격에 치명타를 입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군인은 반드시 투구를 써야 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투구라고 했어요. 구원의 확신을 말 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해 주셨다는 믿음과 주 예수의 재림 날 우리의 승리가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 입니다. 이러한 굳건한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성도를 사단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줍니다.
자 여태까지 나온 5가지 전신갑주의 특징은 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구’라는데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적을 공격할 무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여섯째, 성령의 검 (17b) 입니다. 17b절 보십시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검은 유일하게 공격용 무기입니다. 그런데 17절을 보니까 이 성령의 검이 사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을 성령의 검 입니다. 사단을 무엇으로 무찌릅니까? 말씀으로 이깁니다.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 입니다. 아무리 검이 있어도 날이 무디면 적을 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인은 늘 자신의 검을 날카롭게 날을 새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될 때 성령의 검이 날카로워지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힘이 있습니다(히 4:12). 이 말씀이 원수 사단의 모든 궤계를 무찌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단에게 시험 당하실 때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쟁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 입니다. 진리로 허리를 띄 띠십시오. 의의 흉배를 착용하십시오. 복음으로 예비된 신으십시오. 믿음의 방패를 놓치 마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착용하십시오. 성령의 검을 높게 드십시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십시오. 날마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지십시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