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8 성령 충만해 지혜롭게 살아가기 (에베소서 5장 15-21절)

요즘 우리는 백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나이가 60세만 되어도 크게 환갑 잔치를 했습니다만,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평균 수명이 그만큼 올라간 거죠. 그러나 칠십 세 또는 팔십 세까지 산다 하여도 인생은 여전히 짧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인생을 바라보며 이러한 시를 지었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는 120년을 이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지나온 세월이 마치 궁수의 손을 떠난 화살처럼 신속히 지나가버렸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죠? 지나온 시절 부모님 밑에서 형제 자매들과 한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던 지나간 그 때,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다니던 그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눈 깜짝 할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 합니다. 달리기 경주를 시작한 선수가 언젠가는 결승선을 밟게 됩니다. 입학식을 한 학생도 시간이 지나면 졸업식을 참석하게 됩니다. 취직을 한 20대 청년도 언젠가는 머리가 희어진 상태로 퇴직식을 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요람에서 갓난 아기로 태어나 마지막 누울 무덤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한한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교훈입니다.
15-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인생을 흥청망청 아무렇게나 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할지 자세히 주의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처럼 살라고 권면 했습니다. 지혜 있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 입니까? 우리의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가치 있는 일, 영원한 일을 위해 우리의 모든 삶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헛된 것, 썩어질 것, 사라질 것을 잡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일평생 재물을 모으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재물은 정녕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죽으면 그 많은 돈 다 어디 갑니까?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자 되기 위해 힘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피부와 미용 혹은 건강에 모든 신경을 쓰며 살아 갑니다. 물론 어느 정도 자기 관리는 필요합니다만, 마치 그것이 전부인냥 사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죠. 나이 들면 이마와 볼에 주름도 생기고, 뱃살도 쳐지고, 여기 저기 몸도 고장 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육신 입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듬 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화무십일홍 십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권불십년 하늘을 찌르는 권력도 십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까? 썩지 아니할 것, 사라지지 아니할 것,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무엇이 영원 합니까?
서울 내수동에 위치한 내수동 교회는 청년 사역으로 유명한 교회 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존경받는 목사님 가운데 내수동 교회 청년부 출신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내수동 교회 쳥년부는 늘 이런 슬로건을 외칩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참 멋진 말이죠? 사실 이것은 기독교 사상사 C. T. Studd 가 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그리스도를 위한 일로 가득 채우며 살아갈 때 가장 가치가 있고, 귀하며 복되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7절에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그렇다면 주님의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8절에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에 취한 사람은 술의 노예가 되어 움직입니다. 그 사람의 이성도, 판단도 온전하게 작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처럼 세상의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 보실 때 방탕한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삶’ 입니다.
자, 그렇다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시와 찬미와 노래로 서로 화답하게 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술에 취한 사람들은 흥청망청 고성방가로 세상 노래를 부릅니다. 술 취해서 노래 부르는 분들 보면 뭐가 그렇게 기쁜지 몰라요. 또 어떤 분들은 뭐가 또 그렇게 슬픈지 엉엉 울며 노래 부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찬송을 부릅니다. 여기서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이야기하며,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한다는 것은 단순히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날 구원하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내 삶에 베푸신 은혜에 감격해서 드리는 감사와 찬양을 말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서 눈물이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시겠어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떤 술취한 사람들 보면 자신 안에 쌓여 있는 불평과 원망을 마구 늘어 놓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어때요? 범사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발견하는 거에요. “아, 하나님 들에 핀 저 꽃 한 송이도 나를 위한 것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의 감격이 충만할 때는, 사람이 풀 한 포기도 새롭게 보이고 날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서로 존경하며 복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술취한 사람들 보면, 상대방에게 함부로 말하게 되고 서로 상처를 줍니다. 막 상대방에게 화를 냅니다. 물건을 던지는 분도 있고요, 심한 경우 폭행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막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나의 구원자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나도 섬기는 자리에 서서 상대방을 존경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월을 아끼고 성령 충만하여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고, 범사에 주님께 감사하며, 서로를 섬기며 사랑하는 성령충만한 삶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