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6 나의 빛이요 구원이신 하나님 (시편 27편 1-6절)

다윗은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악인들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라는 말과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라는 표현으로, 3절에는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라는 표현으로 그가 처한 긴박함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수많은 무리들이 다윗의 목숨을 빼앗아가기 위해 사방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세상에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한 두 사람만 있어도 밤에 잠을 못 이룰 것인데, 지금 다윗은 그를 죽이려고 하는 자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큰 군대 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다윗을 엄습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을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속 다윗은 오히려 1절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쉽게 말하면 그는 군대가 사방으로 성을 포위하고 있으며, 수많은 군대가 자기를 치러 왔지만 결코 두렵지 않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담대한지요? 3절 말씀을 보시겠어요?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3절 마지막에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는 말은 그 일이 별 것 아닌 듯이 태연하게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대범한 고백입니까? 지금 코 앞에 적들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칼과 창을 들고 서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적들의 숫자를 헤아리기 힘듭니다. 어떻게 다윗이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에게 모든 난관과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인 빛과 능력이 있기에 이처럼 태연할 수 있다고 고백 했습니다. 죽음의 그늘마저 무찌르는 절대적인 빛은 무엇입니까? 모든 환난을 이겨내는 절대적인 능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은 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다윗이 의지하는 절대적인 빛과 능력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빛이 되시고 능력이 되셨습니다. 다윗이 의지한 여호와의 빛은 어두움을 몰라내고, 여호와께서 주시는 생명의 능력은 사망의 음침한 그림자까지도 물리쳤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신뢰함으로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빛과 능력의 원천으로 삼을 때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마음에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1편에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 율법 안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했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 있어도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래, 우리 하나님은 홍해도 가르신 능력의 하나님이시잖아! 그래, 우리 하나님은 골리앗과도 같은 거인을 단 번에 무찌르신 강하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잖아! 그래 우리 하나님은 사자굴에 들어간 자도 살려주시는 놀라우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잖아!”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바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주 여호와의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묵상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습관은 다윗이 전쟁에 나가거나, 적들에게 둘러 쌓이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빛을 발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을 신뢰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절대적인 빛과 능력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처럼 빛과 능력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에도 평안과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다윗은 이 빛과 생명의 능력을 어디에서 얻었을까요? 다윗은 그 비밀 장소를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4절에 그는 하나님께 오직 한 가지를 구합니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모든 어둠을 물리치는 여호와의 빛이 비취고, 모든 죽음조차 무찌르는 생명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입니까? 바로 여호와의 집 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이요, 신약시대에는 교회 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평생 하나님 거하시는 성전에 있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이것은 365일 24 시간 성전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지내는 삶을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지금 평생 하나님 거하시는 성전에 있게 해달라는 것은, 그가 혹 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어 성전에서 쫓겨나거나, 게을러지거나 혹은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겨 성전 찾기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왜 다윗은 이처럼 성전에 거하기를 사모합니까?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시기에, 성전이 바로 빛과 능력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시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다윗이 성전에 거하기를 사모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환난 날에 그 백성을 그의 초막과 장막을 통해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보호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사모 했습니다.
또한 6절에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원했던 또 다른 이유를 설명 했습니다. 6절을 보세요 “(시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에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이 깨달은 놀라운 한 가지 비밀…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예배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며, 주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즐거운 제사를 드리게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얼굴을 찾는 자에게 구원의 빛을 비춰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강한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다윗은 이 놀라운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기를 원했으며,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하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다윗은 평생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의지한 다윗에게 구원의 빛이 되어 주셨고, 생명의 능력이 되어 주셨습니다. 수많은 적군들이 다윗의 목을 노렸지만, 하나님은 생명싸개로 다윗의 목숨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도 다윗이 담대하고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다윗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빛처럼 늘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는 적군이 그를 치러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란 고백을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다윗처럼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도 환난의 바람을 불어옵니다. 그러나 그 바람에 쉽게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환난의 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여호와의 전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빛과 능력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과 환난 속에서도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여 이 곳에 오신 모든 성도님들 다윗처럼 놀라운 치유의 빛 되시고 생명의 능력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모든 환난과 어려움을 능히 이기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