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7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겸손 (1) (빌립보서 2장 5-11절)

로마 황제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여겨졌고, 사람들 사이에서 신처럼 추앙 받았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그 스스로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아폴로, 포세이돈과도 같은 유명 신들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조각을 만들고 미술 작품을 남기게 하는 등 자신이 마치 지상의 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단이 인간의 마음에 심어준 욕망과 교만의 결과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반기독교적인 세상에서 유행하는 모토를 보면 ‘당신도 신이 될 수 있다.’ 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요가나, 뉴에이지 음악의 공통분모가 바로 ‘신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곧 신이다.’ 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인간이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 세대전만해도 신이 없다고 말하면 신성모독이라고 벌을 받던 사회에서 이제는 신이 있다고 말하면 개인이 가진 신앙의 자유를 모독한다고 사람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문화와 사상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문화가 어제 오늘 새롭게 나타난 풍조는 아닙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유혹 했습니다. 사단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가 되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이 세상에 신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세상은 우리 스스로를 높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도 바울은 교만한 삶의 태도를 권장하는 세상의 풍조에 반대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가져야할 자세인 ‘겸손’을 빌립보 교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5절 말씀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황제와 전혀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인간인 로마 황제는 스스로를 높이고 신이 되려 했으나, 진짜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반대로 인간의 몸을 입고 낮아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본을 우리들도 마음에 품으라고 말했습니다. 선택이란 갈림길 서 있을 때, “만약 예수님께서 내 상황 속에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어떤 길을 선택하셨을까?”하는 이러한 질문들은 분명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킬 것입니다.
앞서 빌립보서 2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 “서로 한 마음을 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왜 뜬금없이 ‘겸손’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겸손한 자세 없이는 교회가 서로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건강한 교회였고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물질과 기도로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 교회에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복음을 위해 열심으로 일하는 교회의 듬직한 일꾼들이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연합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연합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언 13장 1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그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원인은 교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들의 마음이 교만하면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고 서로 하나되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즉 반대로 말하면 겸손함이 없으면 교회 안에는 다툼과 허영이 찾아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교만한 사람일까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또한 ‘나는 틀린 것이 없다. 나는 언제나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교만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교만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교만’이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 난 교만하지 않은 걸 이 설교를 아무개 집사님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항상 옳고 남은 틀리다’고 생각한다면 교회는 늘 다툼과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5절 말씀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마음을 품을 때 교회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겸손’은 어떤 모습일까요? 겸손의 또 다른 이름은 ‘자기 포기’ 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권위와 신성의 모든 영광을 다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겸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겸손의 다른 이름은 “자기 포기”입니다. 자기 신분, 위치,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겸손한 척 해도 포기가 없으면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가 희생하고, 헌신하고, 손해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을 겪고, 분한 일, 원통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사랑은 고난입니다. 사랑은 자기포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자기를 비워 인간이 되고, 종이 되고, 낮아져서 말구유에까지 오셨던 사고방식, 가치체계, 태도,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을 읽으면 얼핏 굉장히 멋진 구절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깊숙이 묵상해 보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말입니다. 겸손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고 낮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졌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비웠다’는 말은 컵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다 쏟아버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겸손’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 소유, 특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고, 버리지 않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것 하나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포기 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다 주장하면서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부싸움의 본질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은 채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관계의 갈등의 시작도 동일 합니다. 내 자존심, 내 소유, 내 명예를 다 지키면서 사랑하려고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희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광, 통치, 다스림을 다 쏟아 버리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헌신과 희생 없는 사랑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7절에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말이 바로 주님의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섬김을 받아야 마땅한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셨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신비는 바로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본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고 자기를 낮추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의 낮아지심은 구유에 태어나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자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낮추시고 하늘의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죄인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에 한동대라는 대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전 총장인 김영길 총장이 일주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영길 총장이 구치소에 들어간 첫날 32명의 죄수들이 비좁게 들어가 있는 작은 방에 배정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벽에 얼굴을 대고 무릎을 꿇고 신고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3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좁아서 제대로 못 눕고 칼잠을 자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나? 그동안 한동대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과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본인도 상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김영길 총장의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는 중 마음속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빌립보서 2장 5-7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김영길 총장은 이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여 경주 교도소에서 대구 교도소로 죄인처럼 이송될 때도 이 말씀을 생각했고 독방에 갇혀서, 정좌를 하고 있을 때도 이 말씀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 분이 훗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와서 그런 고생을 하셨는데 제 지나간 과거의 삶을 보니 정말 저는 예수님을 위해 고생한 것이 없었습니다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겸손의 실체는 ‘자기 포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은 그가 십자가에 달려 보여주신 희생과 포기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들어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이고 포기 였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포기하시고 인간이 되셨던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 겸손의 진짜 모습 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포기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겸손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자신이 가진 것들을 주님을 위해 내려놓고 희생하며 포기할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희생과 포기를 통한 겸손의 마음을 오늘 이 하루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