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3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장 1-6절)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가장 마음이 낙심 되고 좌절이 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주님께 나아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저 밤하늘에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처럼,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죠.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하나님이라 느껴질 때가 바로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힘이 빠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순간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들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태까지 지나온 고난을 다시 돌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코 멀리 계시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주 가까이에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들을 지켜주고 계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 분도 아니고, 우리 삶에 무관심한 분도 아니십니다. 다만 고난 속에 발견되는 하나님을향한 불신과 원망이 우리 눈을 가리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고난을 통해 불신과 원망의 이물질이 제거되고 나면 정금과도 같은 믿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짙은 안개와 같은 고난이 지나가면, 이전에는 이해 되지 않았던 하나님의 진리가 명확하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욥기가 바로 이러한 신앙인의 연단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 안에도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이란 불순물은 존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그의 영혼 안에 있는 이물질들을 제거 하셨습니다. 뜨거운 불에 불순물이 녹듯이 참 아픈 고난과 연단을 통해 욥의 영혼에 머물던 불신과 원망은 사라지고 이제 욥은 정금과 같이 나오게 됩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욥기 42장 1-2절 말씀, “(욥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 42: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나서 처음으로 고백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못하는 일이 전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찬성과 반대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전에 욥은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자신의 뜻과 맞아야 한다고 은연 중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욥이 회사의 중역이고 하나님이 말단 사원이여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욥의 허락이 있어야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욥은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을 향해, 왜 자신의 뜻과 다른 삶을 주셨냐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님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내 자신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겸손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해 내뱉었던 자신의 불신과 원망의 무지한 말들을 뉘우쳤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이전에는 자기도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 앞에 서 보니까 자기는 정말 아는 것이 없는 미련한 존재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3절에 욥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을 가린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말하고 너무 기이 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내가 내뱉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제 파악도 못하고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막 떠들어 댔습니다. 주님 용서해주십시오.”
4절을 보겠습니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4절은 해석하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역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묻겠으니 너는 대답하여라’고 하셨지요?” 욥이 계속 하나님께 질문 했었잖아요? “하나님 왜 날 이렇게 괴롭히세요? 하나님 그렇게 할 일이 없으세요? 죄가 없는 자를 이렇게 괴롭히셔도 되는 거에요?” 욥이 막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묻고 있는데, 폭풍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욥아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이제 내가 너에게 묻겠으니 너가 한 번 대답해 보거라!” 38-41장까지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어보신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지혜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선하시고 완전하심을 겸손하게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제가 서두에 말한 것처럼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이제 고난의 끝자락에서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을 더 가깝게 만나게 됩니다. 이제 이해가 되는 거에요. “아, 하나님께서 나를 한 번도 버리신 적도 없고 떠나신 적도 없으시구나?”, “나는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더 크신 지혜로 내 삶을 인도해오고 계셨구나?”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늘 욥기 42장 5절에 욥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한 번 여기에 별표를 치고 밑줄을 그어 보시겠어요? 왜냐하면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바로 이 한 구절이야말로 욥기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욥이 고난을 겪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만 들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 들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건너 들었다는 거에요. 즉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알았어요. 우리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건너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 모르지만 건너 들어 어느 정도 아는 거죠. 그러나 간접적인 관계는 전혀 모르는 관계나 다름이 없습니다. 욥은 자신이 이전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처럼 귀로만 들은 정도 였다고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만 같았고 자신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정도가 마치 바로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 실제로 욥은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엄청난 고백입니다. 물론 이 말이 그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아남을 죄인은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그가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이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접적인 경험이 아닌, 그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결코 멀리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귀로만 듣고 간접적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이제는 너무도 분명하게 보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선명하게 깨달아 집니다. 욥이 진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것이죠.
6절 결론입니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신앙생활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고백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된 사람은 자신의 내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더러운 죄악과 회개해야 할 과거의 실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 생각했으나, 하나님을 직접 보게 되자 자신의 영혼 안에 교만함과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이 자리잡고 있는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들도 욥처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서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삶에 아무런 관심도 갖고 계시지 않은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거나 떠나신 것처럼 느껴지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진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들을 돌보아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우리 영혼을 연단하고 계시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교만과 불신과 원망의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우리 영혼을 정금 같이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귀로만 듣는 신앙이 아니라, 내 삶에 말씀하시며, 찾아오시고,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