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1 영적 침체에 빠진 욥 (2)

고대 사회에서 전쟁 중에 적국을 치기 위해 먼 거리로 원정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대 전쟁 중에 손 꼽을 정도로 유명한 전쟁이 로마와 카르타고가 싸운 포에니 전쟁입니다. 당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로마를 치기 위하여 대군을 이끌고 먼 여정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승리를 위해 병사들과 함께 저 험한 알프스 산맥까지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엄청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이 자신의 나라를 침략했다는 것입니다. 한니발 장군은 로마를 치는 것에만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기 나라가 로마의 대군에 공격 당할 위험에 처해 있음은 알지 못했던 것이죠.
영혼의 침체가 찾아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이 고난에 빠지고 환난을 당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만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데 소홀해집니다. 그런 가운데 환난이 장기화 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차 그의 영혼이 조금씩 영적 침체의 늪에 빠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환난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영혼의 침체입니다.
욥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영적 침체에 빠지자, 전에 가졌던 그 신앙도 전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주위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누구보다도 교회 열심히 다니던 그 집사님… 누구보다 성실하게 교회 예배 참여하고, 섬기는데도 가장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하시던 그 집사님. 참 저 집사님만 보고 있어도 은혜가 된다…하고 생각했던 그 집사님이 어느 날 인생에 큰 고난을 당하자 교회를 떠났습니다. 여러분 이런 집사님 보신 적 없으십니까? 실제로 지금도 교회에 많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왜 그토록 예수님 잘 믿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그토록 잘 다니던 교회를 멀리 할까요? 그들의 영혼이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진 않지만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고 교회를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불평하는 것 정도는 큰 죄라고 잘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나 불평은 그 말하는 사람의 마음의 틀을 허물어 버립니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녹여버리는 굉장히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평은 사람의 영혼을 일그러뜨립니다. 오늘 욥의 영혼이 그러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속에 있었다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확 일어나서 봇물 터지듯 욥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감정이 말을 조제하고 그로 인해 뱉은 말이 감정에 더욱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욥의 아내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해준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려라!” 이런 불평을 쏟아놓은 후에는 모름지기 더욱더 적대적인 감정으로 불탔을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올바른 판단력과 지혜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서 어떻게 절망 속에서 돌이키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그 환난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음을 언제나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영적 침체에 빠져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난 속에 있을 때, 오히려 더 열심히 자신의 영혼을 돌보아야 합니다. 위험한 상황에 있을수록 더더욱 자신의 영혼을 돌봄으로 환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영혼이 삶을 굳게 지켜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된다.
욥은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영적 침체에 빠져서 그의 믿음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는 영적 그로기에 상태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이런 영적 침체에 빠지자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았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면 나타나는 또 다른 증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지금 이것도 하나님을 향해 비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죄를 지었다고 칩시다. 나 같은 게 죄를 진다고 그게 주님께 무슨 해가 됩니까?” 욥은 이제 막 나갑니다.
그는 스스로 이만한 벌을 받을만한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자신이 무슨 죄를 범해서 이토록 무서운 재앙에 처하게 된 것인지 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20절에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올림픽 대표선수들이 화살 쏘는 거 보면 과녁 정중앙에 있는 10점을 맞추기 위해서 숨도 멈추고 활을 쏘죠? 궁수가 과녁을 맞춤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정조준하고 계시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내 친구들도 아니고 내 이웃들도 아니고 왜 이리 나만 괴롭히십니까? 왜 나만 이렇게 겨냥하십니까?” 욥은 하나님은 그에게 이제 무거운 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해 “날 좀 내버려달라고 날 좀 그만 괴롭히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21절은 더 합니다. (7: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 내가 죄를 지었다고 칩시다. 죄가 있으면 좀 어떻습니까? 하나님 정도 되면 용서해 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욥은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지금 시험을 당하고 있으며 이게 다 하나님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21절 후반부에 나오는 표현은 더 합니다.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 궁수가 과녁을 정조준 하듯이 나를 괴롭히려고 또 다시 부지런히 한 번 찾아 다녀 보십시오. 나 이제 죽을 거니까 이제 나 괴롭히고 싶어도 더 이상 못 괴롭힐걸요?”) 여러분 이게 신앙입니까?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시는 자도 여호와시며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라고 했던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은 하나님의 주권은 인정하면서 자신의 생명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까? 욥은 불평이란 독약을 먹고 신앙심이 아예 가버렸습니다. 영적 침체가 이처럼 무섭습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에서 빠졌을 때 여전히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심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마 이런 질문을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정말 선하시다면 왜 내 인생에 이런 고통이 있습니까? 당신도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하지만 그럼 왜 영적 침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생의 벼랑 끝에 세우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태양 같으신 분이세요. 만물에 빛을 비추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나무와 꽃과 같은 것은 태양으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받아서 자라갑니다. 나무나 꽃에게는 태양이 선한 것이에요. 그러나 곰팡이나 균은 어떻습니까? 태양이 강하게 내리 찔수록 균은 죽어갑니다. 균의 입장에서 보면 태양이 나쁜 거에요. 그러나 정말 태양이 나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한 번 보세요. 의사들이 그의 몸에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아주 독한 항생제를 투여합니다. 그러나 의사들을 보고 나쁘다고 욕하는 환자는 아무도 없어요. 비록 그 독한 항생제 때문에 머리도 빠지고, 머리도 어지럽고, 심하면 구토도 나지만, 그 고통을 참아내어야 좋은 세포들을 죽이는 암덩어리가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항생제로부터 오는 고통을 인내한 사람만이 암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새생명을 받게 됩니다.
시련을 겪으며 수 많은 생각이 지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궁수처럼 왜 나만 겨냥해서 괴롭히시는가?” 하고, “태양이 악하다”고 말하는 균처럼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세요. 우리가 사람에 대해 험담을 들어도… “아니야.. 절대로 그럴리 없어..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야…”하고 말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아니야 하나님이 그러실리 없어. 그것은 나의 착각이고 생각이야. 아니야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야. 내게 악을 행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야. 나는 악을 행할지라도 그 악 까지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야… 그 분이 나를 말씀으로 건져주실 것이야…”
두려운 환난이 우리의 삶에 찾아와서, 그토록 의지하던 재물을 잃어버리고, 환경의 평안함을 잃어버리고, 건강의 적신호가 찾아와 온 몸이 고통을 받고, 영혼이 아무리 괴로워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이 진리를 끝까지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말씀으로 우리를 건져내심
둘째로,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 분의 말씀으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한 순간에 우리를 구출해줄 수 있으십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거 하나에 있습니다. 시험 속에서 망가진 영혼이라는 것이 드러났는데… 그것이 고쳐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았을 때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고 이 시험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인간의 목적이지만… 하나님은 이 시험에서 실패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영혼을 고치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환난의 학교에서 우리를 아주 값비싼 희생을 치르면서 우리로 하여금 배우게 하십니다. 신앙은 성공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책망과 고통이란 환난의 학교에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갑니다.
환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의 파괴이다.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대들고 하나님 앞에 비아냥 거리고 하나님을 향한 온갖 불순종과 대적의 감정이 솟구칠 때, 자신이 영적 침체에 빠졌음을 인식하고 오히려 이런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을 때일수록 자신의 영혼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으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이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