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3 인간의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 (욥기 4장 12-21절)

경험보다 확실한 논증은 없습니다. 상대방이 “너가 진짜 봤어?” 하고 물어볼 때 “내가 봤다니까?”하고 말하는 것은 확실한 셈이죠.
오늘 본문은 엘리바스가 자신이 경험한 신비적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엘리바스는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그는 불안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지막히 속삭이는 것을 그는 들었습니다. 영적 존재가 그의 앞을 지나가는데 온 몸에 털이 삐죽 서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습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자신 앞에 영적 존재가 서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적막이 이어지는 가운데 엘리바스는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본문 17절부터 21절 말씀은 엘리바스가 꿈에서 어떤 영적 존재로부터 들은 음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욥 4: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17절부터 21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창조주 하나님과 비교하여 절대적으로 불의한 인간, 무능한 인간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4장 1-11절까지 욥의 범죄와 그의 불의함에 대해서 주장했으며,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의 신비적 체험을 이야기하며 거룩하신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욥은 죄인일 수 밖에 없으며, 그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결국 그의 죄의 결과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본문에 기록된 엘리바스의 신비적 체험에 대해서 여러가지 분분한 의견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엘리바스가 자신의 논증을 위해서 거짓으로 꾸며진 체험을 말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학자들은 엘리바스 자신이 경험한 일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엘리바스의 신비적 체험이 거짓이든지 진실이든지, 그에게 영적 존재가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욥 4:18)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종들도 우리와 같이 실수하고 죄에 넘어지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 속였고, 야곱은 시력을 잃은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자신을 형이라 거짓말 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돌로 쳐 죽였고, 다윗은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를 취했습니다. 엘리바스가 말한대로 하나님의 종들이라 할지라도 완벽한 존재는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선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 서면 그의 불의함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엘리바스는 천사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 그 지혜나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천사도 하나님 앞에서는 미련하고 미약한 피조물일 뿐입니다.
19-20절에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비교하여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19-20절 입니다. “(욥 4: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욥 4:20)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인간은 흙으로 만든 주택에 거하지만 결국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19절에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라는 말은 원문을 살려 번역하면 “하루살이처럼 쉽게 소멸될 자”입니다. 20절을 보면 “조석 사이에 멸한 바…”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는 존재 입니다. 유한한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인간의 나약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며 사람들은 이 덧 없는 세상에서 지혜 없이 부귀와 권력만 뽐내고 살아가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욥 4:21) 장막 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장막은 오늘날로 말하면 천막 집, 텐트 입니다. 텐트를 칠 때는 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줄을 팽팽하게 연결한 후 땅에 줄을 박아 둡니다. 그러나 다시 이동할 때가 되면 그 줄들을 땅에서 뽑아냅니다. 장막 줄을 뽑아내면 장막이 무너지듯이, 엘리바스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마치 장막 줄을 뽑아내듯이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가 말한대로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엘리바스가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욥의 특수한 상황에 원론적으로 적용하려는 부분이 잘못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엘리바스가 신비적 체험을 통해 말하는 내용들은 교리적으로 틀린 부분은 없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은 불의하며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흙 집에 사는 한 줌의 흙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세상의 것들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제 대만에서 열차 탈선 사고로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중, 그 누가 자신이 그렇게 죽게 될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도 허리캐인 마이클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누가 자신의 삶이 어디선가 불러온 강한 바람에 그처럼 파괴될 것이라고 예측 했을까요? 우리 모두의 삶은 하루살이처럼 이 세상에 잠깐 왔다가 잠시 후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인간은 연약하고 무능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 보실 때 가치 있는 존재요, 귀한 존재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 하십시오. 우리의 불의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 안에 머무십시오. 비록 연약하고 불의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하루살이 같은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실로 귀중하게 여겨 주십니다. 오늘 이 하루도 허무한 세상 속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