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을 보면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식을 우상에게 바치는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물로 선정된 아이의 목숨을 신상에게 바치는 것이죠.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이런 생명 경시 풍조를 매우 싫어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녀를 죽여 우상에게 바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을 매우 귀중하게 여깁니다. 오늘 본문에는 피를 먹는 것을 매우 강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피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를 누가 먹을까 하지만, 사실 세상에 피를 음식이나 약재로 먹는 민족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만 봐도 사람들이 노루의 피를 ‘장혈’이라고 부르며 체질이 허약한 사람에게 기를 보강해 주는 약재로 사용했습니다. 한국인이 먹는 선짓국도 사실 동물의 피를 굳혀서 젤리 같은 상태로 만든 선지가 주재료로 들어가는 것이죠. 스웨덴에는 피를 푸딩처럼 가공해서 먹기도 합니다. 핀란드 역시 우리나라 선짓국과 비슷한 스프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처럼 선지를 그대로 스프에 넣는 것이 아니라, 만두피 비슷한 반죽에 한번 싼 후에 스프에 넣습니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아예 순록의 피를 생으로 마십니다. 그들은 순록의 피가 철분을 보충해주는 중요한 영양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피를 먹는 일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는 것일까요? 히브리인들은 피가 심장을 움직이게 하며, 피가 사람으로 숨을 내쉬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어찌 보면 현대 의학으로 생각해보아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피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피를 흘리는 것은 죽음을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 행위는 하나님께 큰 징계를 당했습니다.
먼저 본문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여기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히브리어 표현이 조금 흥미롭습니다. ‘진노하다’라는 말은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어 뚫어지게 그를 쳐다보겠다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이해가 잘 안 되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갔던 모세도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도 두 날개로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거룩함을 보고 살아남을 존재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진노하다’란 말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버리시겠다는 선고가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피를 먹는 자를 강하게 경계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인 사도행전 15장 29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를 한 이후 피를 먹지 말라는 권고사항이 온 교회에 전해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15장 29절을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행 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즉 신약 시대에서도 생명이 담긴 피를 먹는 행위는 그리스도인들이 삼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 10절로 돌아와서 피를 먹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끊어지다”라는 말 역시 ‘자르다’, ‘죽이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죄를 범하면 가위로 자르듯,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서 제거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언약의 공동체에서 제거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받지 못합니다. 죄와 허물을 용서받는 은총도 상실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서 제거 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 포함 될 수 없다면 이는 실로 인생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따라서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피를 먹는 자에 대해서 이렇게 강하게 경계하신 것으로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생명이 담긴 피를 먹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혐오스럽게 생각하시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창세기에 보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는 노동해도 대가를 얻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으며, 자신이 거주하던 땅에서 서로 추방 당했습니다. 피의 가치를 소홀히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피를 흘려 주신 것은 주님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흘려주심과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겠습니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염소의 피흘림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해서 염소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염소의 피로 생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누구에게서 생명의 피를 봅니까? 염소도 아니요, 다른 짐승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들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비참하게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죄를 사함 받고 새 새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의 피만 소중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피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피를 먹는 행위를 금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심을 기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들의 영혼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생명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