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속죄제의 제물이 되는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립니다. 속죄소는 시은소라고도 하는 법궤의 뚜껑을 말합니다. 속죄제 염소의 피를 뿌리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와 회막 전체를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성막이 죄로 인해 더러워지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성막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막이 더러워지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더러워지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는다는 이 영적인 원리는 과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영혼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지성소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는 눈에 보이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결케 해야 할 곳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를 정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주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고, 죄와 동행하실 수도 없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 대제사장이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에 뿌려 지성소와 회막 전체를 정결케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고 피로 우리 마음에 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로 인해 부정해진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늘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영혼에 뿌린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를 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우리 마음에 뿌린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진실함으로 우리 죄를 회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1년에 단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제사를 드렸으나,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의 부정함을 제거하는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죄에 쉽게 노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시로 우리 안에 있는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날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체험하며, 주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수록 성령은 소멸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죄와 싸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수록 성령은 더 강하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게 육신에게 져서 살 것이 아니라,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와 싸워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고, 결단은 밤낮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힘만 가지고 죄와 싸울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서 죄와 싸우려 하는 사람은 마치 골리앗 앞에 죽으러 나가는 이스라엘 병사와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을 위해 죄와 대신 싸워줄 다윗과 같은 장수가 필요합니다. 그 분이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비록 우리 혼자서는 죄를 이길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과거의 죄악이 가득한 삶을 버리고,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스포츠 경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먼저 골을 넣거나 득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편이 지고 있다고 축 늘어져 있거나 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 계속 뛰어야 합니다. 적에게 골을 먹었으면, 다시 열심히 공격해서 우리가 골을 넣고 역전하면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이제 나는 끝이구나.”하고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나팔 소리가 온 세계에 울리는 그 날까지 아직 우리 영적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 죄와 더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2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직은 은혜 받을 수 있는 시간 입니다. 아직은 구원의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죄를 저질렀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정결한 삶만이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 수 있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지었으면, 다시 죄사함의 은혜를 통해 정결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며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사함받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