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 규례를 말씀하시면서 지나간 이 사건을 언급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것은 대속죄일의 규례가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대로 행해져야만 하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고 기름 부으신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법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진노하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합니다.
이는 구약의 대제사장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섬길 때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섬겨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비극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하나님을 섬긴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의 형편과 생각대로 행할 때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교회를 위해 전 재산을 파는 대단한 결정을 하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 뜻대로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역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분향하지 않고 자기들 뜻대로 다른 불을 분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들이 다가 아니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 말씀대로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아말렉의 왕을 살려주었다가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물론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다고 해도 구약 시대 사람들처럼 즉각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우리 마음에 좋은 방법과 뜻대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상황 윤리’에 따라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즉 내 ‘입 맛’에 맞게 하나님을 섬깁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자기가 원하는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상황 윤리’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는 뜨거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내가 손해본다.’는 식의 상황 윤리로 사는 모습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우리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된 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수고와 봉사를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삼겹살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내는 생선은 싫어합니다. 남편은 정 반대 입니다. 고등어, 갈치 같은 생선은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나 삼결살은 자기 돈 주고 절대 사먹지 않을 정도로 고기를 싫어합니다. 아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 살아온 아내가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온 남편을 섬기겠다고 고기를 싫어하는 남편에게 삼겹살을 구워서 저녁 반찬으로 주면, 남편 마음은 어떨까요? 비록 아내는 뿌듯해 하고 있을지 몰라도 남편 마음 한편 어딘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릅니다. 무디 교수로 섬기고 있는 게리 체프먼이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 썼습니다. 사람마다 상대방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사랑을 받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이 사람이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감사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받을 때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터치해주는 말을 해줄 때 사랑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내어 함께 해줄 때 사랑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안아주고 손 잡아줄 때 사랑을 느낍니다. 사람마다 사랑을 주는 방법과 받는 방법이 다른 것이죠. 게리 체프먼은 특별히 남녀 사이에서 서로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이 받기를 0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불이 아닌 다른 불을 주님께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천 마리의 소와 만 마리의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는 것 보다,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소나 양을 잡아 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오늘 이 하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사랑의 언어로 주님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