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5 삶의 작은 일에도 거룩하게 (레위기 11장 13-28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구별되도록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정한 동물과 먹지 못하는 부정한 동물을 구분하여 주셨습니다. 어제 새벽에 우리는 육지에 사는 네 발 달린 동물 중 정결한 동물이 되는 기준 2가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굽이 갈라진 동물이어야 합니다. 또한 새김질을 하는 동물이어야 합니다. 굽이 갈라진 것은 세상과 구분 되어야 함을, 새김질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하루 가운데 묵상하여 되새겨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기준은 육지에 사는 4발 달린 동물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내용은 조류 가운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는 기준입니다. 사실 성경을 읽어보면 어떤 새가 왜 정한 동물이 되고, 어떤 새는 부정한 동물이 되는지 그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부정한 새들의 공통점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한 새들은 죽은 시체의 고기를 먹는 새들이거나, 다른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는 맹금류 입니다. 또한 이 새들은 일반적인 새들처럼 둥지에서 살지 않고 거친 들에서 사는 새들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새들의 특성을 살펴보므로서, 생활 속에서 피해야 하는 삶의 요소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부정한 세들은 죽은 시체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이는 성도가 부정한 것을 좋아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포악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본문에 부정한 새로 나오는 예들은 독수리와 매 입니다. 이 새들은 다른 새들을 공격하며 먹이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나 매를 부정하게 보신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들을 해치거나 강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정하게 여기십니다.
세상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폭력을 사용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늘리는 데 지나치게 관심을 많이 두어, 타인의 아픔과 고통은 무관심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인들의 이러한 행위를 닮아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우리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돕고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품어주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 주시고 자기 목숨까지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고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어려운 자들에게 베푸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포악함을 가지고 살지만, 우리들은 그런 이기적이고 포악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십자가 사랑이야말로 우리들이 닮아가야 할 모습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선한 행위들을 함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증거를 나타내야 합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짓밟지만,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공중을 나는 새에 대한 음식 규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먹을 수 있는 곤충에 대한 규례도 주셨습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 가운데, 땅에서 뛰어 다니는 다리가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메뚜기나 베짱이 같이 땅에서 뛰어오르는 곤충은 먹을 수 있는 것이죠. 땅에서 뛰어올라 하늘을 날 수 있는 곤충에 대하여 어느 신학자는 성도가 땅이 아니라 하늘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천국을 사모하며 살다가 그 본향을 바라보고 죽었습니다. 만일 우리의 소망이 이 땅에만 있다면 얼마나 허무 하겠습니까? 결국에 내가 이룬 소유는 내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땅에 떨어져 결국에는 썩어 가는 나뭇잎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을 바라보기에 있는 것이죠. 비록 이 땅에서는 고통도 당하고 눈물도 흘리고 환난도 당하지만 영원한 본향인 저 천국, 위의 것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리 있는 곤충이 늘 하늘을 향하여 뛰어다니는 것처럼, 우리들도 땅에서 살지만, 늘 위에것을 생각하고 하늘을 사모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잠시 잠깐 살아갈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한 천국 본향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들은 어떤 환난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결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 새벽을 통해 먹을 수 있는 동물과 곤충에 대한 규례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규례들을 통하여 백성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시길 원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것처럼 다른 새들을 공격하고 죽이려 하는 독수리와 매가 부정한 동물로 여겨진 것 같이, 우리는 다른 이웃들의 것을 빼앗거나 찬탈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거나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부정한 삶인 것입니다. 또한 다리 달린 곤충이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뛰어다니듯이, 우리도 비록 이 땅에 살아가고 있으나, 늘 마음은 저 천국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위해 삶의 작은 일에도 거룩하게 구별하여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